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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취향나름

[이바디] 숨결까지 자연스러운 ‘아날로그 음색’

by soulfree 2008. 5. 22.


숨결까지 자연스러운 ‘아날로그 음색’

어쿠스틱 밴드 ‘이바디’로 새음반 낸 호란              한 겨 례 |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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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힘빼고 화려함 덜고
깃털같이 바람같이


의외다. 클래지콰이의 일렉트로니카 음악 위로 육감적인 목소리를 선보였던 호란(29)이 어쿠스틱 밴드를 결성했다. ‘이바디’. 클래지콰이 세션맨 출신인 기타리스트 거정(36·본명 임거정), 베이시스트 저스틴 김(32)과 결성한 3인조 밴드다. 이바디라는 이름은 단골 술집 이름에서 따왔다. “순우리말인데, ‘잔치’라는 의미가 저희가 들려드리고 싶은 음악과도 딱 맞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전자음 위로 몽환적이면서도 힘 있는 음색으로 깔렸던 호란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그가 어쿠스틱 음악을 하는 모습이 선뜻 그려지지 않는다. “원래 제가 포크나 어쿠스틱 음악을 매우 좋아했어요. 기회가 왔을 때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죠.” 계기가 된 것은 거정, 저스틴 김과의 만남. “한 소속사라 서로 알고 지내다가 지난해 여름 연습실에 놀러갔는데, 저도 갖고 있던 애니 디프랑코 음반을 거정씨도 갖고 있더라구요. 얘기를 하다가 마음이 통해 뜻을 모았죠.”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뜻에서 앨범 이름도 <스토리 오브 어스>(STORY OF US)다.

클래지콰이와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음악을 한다는 것은 그동안 프로그램 진행자,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해 온 호란에게도 큰 도전이었을 터다. “차이를 둬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생길 정도였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음악을 열망해 왔는데, 옷만 갈아입었단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죠.”

목에 힘을 뺐다. 화려함을 덜어내고, 느낌을 살려 부르려 노력했다. 리듬을 정확하게 잡아내야 하는 일렉트로니카 음악과 달라 처음엔 적응이 어려웠다. “기술적으로 불러왔던 게 오히려 장애가 됐어요. 녹음할 때 느낌을 막 타다가도 피치가 나갔다 싶으면 거기 신경쓰다가 느낌이 사라지는 거에요.” 그래서 녹음은 자주 멈춰졌다.

잠 많기로 소문난 그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민한 새 음반 속의 목소리는, 호흡까지 그대로 음악이 됐다. 듣는 이를 빠져들게 만드는 농염한 음색이 한결 자연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신비하게 빛난다. 타이틀곡인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모던포크 색채가 짙은 곡으로, “두라파 두루”하고 노래하는 입바람이 감각적인 음색의 기타에 실려온다. 전반적으로 여유롭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절제된 편곡이 돋보이는 성인들을 위한 어쿠스틱 팝 음반이다.

작사, 작곡은 모두 밴드 안에서 소화했다. 거정은 “꾸미기보다 솔직한 색깔을 보여주려 애썼다”고 말한다. “자극적인 음악이 많은 상황에서 처음엔 부드럽다고만 느껴질 수 있는데, 그 부드러움 속에 보이는 강함의 매력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호란은 최근 누구보다도 바빴다. 이바디 녹음에, 책 <호란의 다카포> 출간 준비, 그리고 클래지콰이 앨범 작업까지 겹쳤지만 몸살 한번 앓지 않고 해냈다. “아직도 제 목소리에 완전히 만족스럽지만은 않아요. 이바디 2, 3집까지 쭉 하면 더 나아지겠죠. 물론 클래지콰이도 해야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보고 싶어요.”

아직 후속곡을 정하진 않았지만, 세 멤버 모두 좋아하는 곡이 있다면 ‘비로 뒤덮인 세상’을 꼽는다. 그냥 들어도 좋지만, 꼭 빗소리와 함께 들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거정이 “비 오는 날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단골 음악이 됐음 좋겠다”고 말하자, 호란은 “앗, 올해 수해 나면 홍보할 수가 없는데”라고 거든다.

이바디는 5월30일~6월1일 케이에스 청담아트홀에서 첫 공연을 한다.

기사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281181.html

커버스토리  이바디의 호란
출처>> http://www.playdb.co.kr/magazine/magazine_temp_detail.asp?kindno=1&no=38&page=1&ticketblockname=main_playdb&ticketlinkname=left_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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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카메라를 압도하는 섹시한 카리스마와
지적이고 강한 자아는
호란을 정의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로 만들고 있어서다.
그리고 데뷔 5년만에
그녀는 자신의 색이 들어간 음악을 한다.
자신의 이미지가 아닌,
그녀 자체를 담은 음악이다.

그룹 클래지콰이의 보컬, 책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 시사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 북 칼럼니스트, 서평을 다룬 책의 저자. 그녀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지만 다른 방송 연예인들과의 교차점은 많지 않다. 그래서 대중에게 그녀는 무대에선 섹시한데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하는 고학력 가수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그게 다는 아니다.
논현동 연습실에서 만난 호란의 첫 인상은 당당함이었다. 인터뷰 전, 낯이 익기도 전에 찍어대는 카메라 앞에서 그녀는 어설픈 표정이나 포즈를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에 그녀에게서 엿볼 수 있는 모습은 단조롭지 않았다. 특히 새롭게 만든 그룹, 이바디에 대한 애정을 말할 때는 끈끈한 정과 고집스러움, 열정과 조심스러움이 뒤엉켜 있곤 했다


이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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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디는 리더리자 드럼과 어쿠스틱 기타를 맡고 있는 거정과 베이시스트 저스틴 킴, 그리고 보컬 호란이 뭉쳐 만든 삼인조 그룹. 이들이 얼마 전 1집을 선보였는데 이미 팬들 사이에선 큰 화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렉트로닉 음악의 화신처럼 군림하고 있는 클래지콰이의 보컬 호란이 이번에는 자연적이고 기교를 뺀 어쿠스틱 음악으로 변신해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호란은 할 말이 많다.

클래지콰이는 매력적인 팀이지만, 보컬들이 자신의 음악을 펼치는 건 아니에요. 클래지씨가 그의 음악을 펼치고 보컬들은 그의 디렉팅을 따라 노래하는 거죠. 굉장히 재미있어 보이는 작업이라 일조하고 싶어서 참여했는데 어느새 바빠지고 덩치가 커졌어요. 한동안 다른 건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거죠. 이바디의 음악은 클래지콰이 이전부터 항상 생각해오던 거고, 음악적인 방향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 결성한 거에요.”

거정, 저스틴 킴, 호란. 이들의 만남은, 호란의 말을 따오자면 ‘이렇게 만날 확률이 없을 만큼 잘 맞는’ 찰떡궁합이다. 음악적인 취향도, 친구로 선배로, 동료로서의 의리와 애정도 각별해졌다.
"지난 여름에, 난 함께할 밴드를 찾있었고, 두 분은 보컬을 찾고 있었어요. 음악적 성향이나 취향이 비슷해서 꿈같이 즐겁게 작업했어요. 입에 발린 말이 아니고, 세 사람이 정말로 서로를 사랑해요. 마찰이란 게 없어요. 물론 음악적인 고집은 서로 있지만 연습실을 나오면 그런 건 문제되지 않아요. 데뷔 이후 이런 게 꿈이었거든요."



어쿠스틱에 빠지다
그녀는 이바디 1집 작업을 마친 뒤, 빨리 2집 작업을 하고 싶어졌다. 물론 클래지콰이도 계속한다. 데뷔 5년만에 열정적으로 하는 자신의 음악 때문에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나의 색깔도 들어가는 만큼 책임감도 커졌어요. 자유와 책임감을 1/3씩 나눠 갖는 거에요.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 댓글이나 음악적 평가에 조금 더 부담감을 가지고 접근해요. 물론 칭찬일색일 순 없지만 호감을 보여주셔서 다행이에요.”

이바디는 전자적인 왜곡을 거치지 않은 언플러그드 악기를 주로 쓰는 어쿠스틱 음악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자 악기를 아예 쓰지 않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녀는 이에 대해 열변이라 할만한 말을 이어갔다. 음악적인 한계를 긋는 걸 경계해서다.
“일렉트로닉 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어쿠스틱 악기들과 어울려서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게 반드시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일렉트로 하우스의 인공적인 느낌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모던 포크의 느낌을 내곤 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쿠스틱’만’ 고집하지는 않을 거에요. 대신 비틀리고 디지털적인 편집 과정을 거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소리들을 저희는 추구하려고요. 예를 들어 전자악기지만 파장을 잘라서 다시 편집하는 건 아니고, 연주자의 호흡을 그대로 담는다는 거죠. 그렇다면 전자악기지만 어쿠스틱한 접근이 될 수 있겠죠.”

좀 어렵게 풀어냈나 싶었나 보다. 그녀는 숨을 고르더니 한번에 정리해줬다. “어렵지만, 한 마디로 할게요! 편안하고 자연적인 사람 냄새가 나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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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단 건, 어찌 보면 행운이다. 명문대 졸업과 북칼럼 연재, 방송에서의 진행은 그녀를 지적인 미와 섹시미를 모두 가진 가수로 이미지화 하게 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녀는 책을 사랑하고 글 쓰는 걸 즐겨서 이런 대중의 시선이 싫진 않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만큼의 어떤 걸 넘어서는 기대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친다.

“여자로서 다 좋은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경계하는 건 확대 재생산 되는 이미지들이에요. 요즘 이미지가 자라는 속도가 내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자칫 너무 부풀려질 수가 있는 거죠. 요즘은 말을 좀 줄이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요. 전문 논객들과도 날카로운 논리를 펼 수 있을 정도가 되고 싶거든요. 이미지가 나보다 앞서나가는 게 싫은데, 그걸 따라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요.”

최근 발간한 그녀의 책 ‘호란의 다카포’는 그녀가 읽고 사랑한 책과, 그녀의 음악에 대해 쓴 에세이. 이 책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말해서, 약간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도 좀 다르지 않은가 하면서. 이제 두달이 지난 시점에서 보니까, 진지한 ‘생각정리’가 필요하더라고요. 가수, 연예인 호란에 관심이 없는 독자도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인가라는 문제죠. 이렇게 자꾸 자기를 객관화 하면 굉장히 괴로운데요. 하하. 제가 가수 이외에 가장 애정을 갖는 분야가 글인데…요즘 글 솜씨나 독서량, 독서폭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지적인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이 탐나서 이러는 거면, 저는 버리고 싶어요. 어설퍼 지는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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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은 쉽지 않는 방송생활에 대해 ‘고고한 뮤지션’이기 보다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음악을 보여줄 채널은 그리 많지 않으니, 열심히 하는 가수'를 택했다. 모든 생각, 스트레스는 무대에서 푼다. 그래도 안 풀리면 ‘술 먹으면 된다’. 요즘 밴드들은 웰빙 열풍이 불어선지 술을 먹지 않지만, 그녀는 ‘언제나 트렌드에는 역행하니’ 개의치 않는다.
이번 이바디 콘서트를 기다리는 그녀의 마음은 이미 설레임을 넘어섰다. 깜짝 놀랄 잔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글 : 송지혜 기자(인터파크ENT song@interpark.com)
사진 :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알몸으로 노래하고 싶은 진심 가수 호란
레이디경향 2008년 5월호
기사출처>>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5&artid=11005

무대 위의 호란은 섹시한 ‘파티 피플’로 보였다. KBS-TV ‘낭독의 발견’ ‘파워인터뷰’와 EBS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의 호란은 단단하고 지적(知的)이었다. 지난 4월에는 보란 듯이 「호란의 다카포」를 펴냈다. 그래도 우린 아직, 날것의 호란을 본 적이 없다.

화려한 이미지의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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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30)은 명민하고 실력 있는 그룹의 보컬이고, 책을 다루는 교육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이기도 했다. 때로는 날카로운 인터뷰어였다. 노래하는 무대에서는 섹시했고, ‘말하는’ 방송에서는 똑 부러졌다. 분명히 그래 보였다.
호란의 이미지는 미디어의 ‘작품’이다. 일종의 환상이라는 뜻이다. 미디어는 대중이 원하는 만큼의 환상을 영리하게 제공한다. 대중에게는 골라 보는 즐거움이 있다. 달콤한 게 좋은 사람은 달콤한 것만, 씁쓸한 게 좋은 사람은 그것만 골라 보면 된다. 출연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미디어의 환상적인 이미지 뒤에 숨어 희희낙락할 수 있다. 그게 (단기적으로는) 더 안전한 길일 수 있다.

“그런 이미지를 입고 있다면 거기에 폐 끼치지 않게, 기본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지는 대중이 결정하는 거지, 저 자신이 멋지다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대중은 (뮤지션으로서의) 제 본모습을 알 수도, 모를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에 머무른다면 다른 훌륭한 뮤지션들이랑 술 마실 때 민망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웃음)”.

「호란의 다카포」(마음산책) 140페이지, ‘이미지와 진실’이라는 제목의 짤막한 글은 1982년의 애니메이션 ‘라스트 유니콘’을 인용한다. 유니콘의 뿔은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다. 보통 사람에겐 그냥 흰 말로 보인다. 하지만 나쁜 마녀만은 유니콘을 알아본다. 가짜 뿔을 달아놓고 동물원에 가둬 장사를 한다.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가짜 뿔을 보러가 눈물 흘리며 감탄한다. 호란은, ‘나는 가끔, 내가 뿔이 보이지 않는 유니콘을 데리고 동물원 장사를 꾸려야 하는 마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썼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지적이고 섹시한 뮤지션’이라는 이미지가 부담스럽다. ‘지적이고 섹시한’ 부분은 그냥 조금 머쓱한 정도고, ‘뮤지션’ 부분은 상당히 송구스럽다. 나보다 훨씬 뮤지션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름답고 순수한 그들의 뿔을 빛내는 걸 보면, 미디어에서 내가 얻어낸 화려하기만 한 가짜 뿔이 민망하다. 게다가 진짜랍시고 달고 있는 내 작은 뿔도 한참 옹색해 보인다”. 「호란의 다카포」 p145

화려한 이미지의 세계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게 미디어라는 마녀가 달아준 가짜라는 것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호란이나, 누군가에겐 낯설 수도 있는 ‘아르토 파실린나’ 같은 작가의 책을 읽고 권하며 즐거워하는 호란이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이미지에 거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단단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싶어요. 이미지만으로 만족하면 단단해질 수 없더라고요. 책도, 음악도 나름의 진심을 충분히 표현했다면, 대중이 받아들이는 제 모습은 솔직함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독자 없는 책이 무슨 소용이고, 관객 없는 무대가 무슨 소용일까. 대중과 소통하려면, 어쨌든 ‘마녀’와 동업해야 한다. 하지만 호란은 만만치 않은 상대다. 미디어의 가짜 뿔을 달고도 ‘진짜 뿔’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게 (장기적으로는) 더 안전한 길이다. 그래서 호란은 유유히 나풀거리는 나비라기보다, 물 밑이 더 바쁜 백조에 가깝다. 호란은 이렇게 이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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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칠푼이 같은 짙은 화장도 벗어버리고, 가벼운 웃음 속에 진심을 섞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중략) 화려하지만 어색한 이미지의 세계보다는 차분하고 솔직한 진실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난 때때로 그리고 강렬하게 염원한다.”

이 ‘강렬한 염원’을 이루기 위한 호란의 도전도 이미 시작됐다. 조금만 더 읽어보면 그게 뭔지 알 수 있다. 일단은 가족 이야기부터.

호란의 달콤 쌉싸래한 가족 이야기
책이 막 출간됐을 때, ‘작가 명함 하나 추가요’ 같은 헤드라인과 더불어 인터넷을 달군 검색어는 ‘호란 어머니’였다. 기사가 쏟아졌던 어느 날은,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내 어머니’라는 글은 딱 세 페이지인데도, 호란이 어머니에 대한 에세이집을 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놀랐어요. 저로서는 예상 못했던 페이지였거든요. 어머니는 전에 이미 그 글을 보셨어요. 그때도 좋아하셨고, 갑자기 검색어 1위에 ‘호란 어머니’가 오르고 하니까, 싫어하시진 않으셨어요. 다만 ‘내가 너무 달콤하고 밝고 맑은 여자처럼 묘사돼서 부담스럽다’고는 하셨죠(웃음).”

호란의 부모님은 의사다. 어머니 방영옥씨는 경기도 과천에서만 20년째 개업의로 일해온 ‘`방소아과의원`’ 원장이고 아버지는 영동 세브란스 병원 소아외과 최승원 교수다. 어린 호란은 웃음 많고, 빈틈도 많고, 소녀 같은 감성 때문에 어딘가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어머니가 진료실에서는 냉철한 목소리의 의사로 ‘변신’하는 게 신기했다. 책에서는 철없는 어린 시절을 담담하게 고백했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일까.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우리 남매는 어머니에게 펭귄이라는 별명을 지어드렸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다리를 저시는 모습이 우리에겐 그렇게 보였던 것일 텐데, 철없는 어린것들이 멋도 모르고 하는 말에 어머니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으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쓰는 것조차 가슴 아픈 일이지만.” 「호란의 다카포」 p199

여기까지는 ‘신파’로 읽힐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호란의 고백은 이렇게 이어진다.
“사실 난 혼자 은밀히 어머니를 ‘`체리핑크생크림베베`’라고 부르고 있다. 마치 딸기쇼트케이크 같은 달콤한 소녀다움을 아직도 간직하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 내면에 간직된 끝없는 강함, 때문에 난 이제껏 어머니를 만나고 즐거워하지 않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몇몇 소심한 남자친구들을 제외하고는).” 「호란의 다카포」 p200

호란은 ‘(음악은) 대학 가서 하라’는 부모님의 말에 연세대 심리학과에 입학함으로써 연세대 의대 출신인 부모님과 동문이 됐고,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클래지콰이’에 합류했다. 부모님은 클래지콰이 1집 후반 때까지만 해도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일은 이미 커질 대로 커졌다. 부모님은, 가수하겠다는 딸을 말릴 시기를 놓쳐버렸다.

“아버지는 전통적인 가부장이어서, 집안에서 아버지와 저는 투톱으로 고집이 세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잘 부딪쳤어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다 보시고 재미가 있으면 복사해두시곤 했거든요. 그럼 저는 ‘아빠, 그거 법에 저촉돼, 하면 안 돼’ 그러고, 아버지는 ‘팔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하고. 그럼 저는 ‘그래도 안 된다’고 우기고, 그렇게 다투다 ‘아빠 도둑놈이야!’ 그러고 울고(웃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여자는 30대가 가장 아름답다’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자랐다. 스물여섯에 호란을 낳은 어머니 방영옥 원장의 30대도 그랬다. 고집 센 딸의 눈에, 그보다 아름다운 여자는 없었다.

“여자는 30대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철들기 전부터 들었으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죠. 지금도 미인이시지만, 1980년대의 어머니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30대 여자가 좋아요. 20대의 아름다움과 30대의 아름다움은 다르죠. 20대도 재미있었지만 30대, 마음이 편해요. 제가 감히 30대를 얘기하고 있는데, 죄송하네요(웃음).”

저녁 무렵 창밖을 내다보는 고양이처럼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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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득한 눈. 마이크 없이도 깊이 울리는 허스키한 목소리. 자분자분,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옹골진 이성. 홍대 앞에서 혼자 사는 서른 살 여자 뮤지션은 자유분방해야 마땅할 것 같지만, 소녀 같은 어머니는 아직도 ‘하숙 보낸 기분’으로 “큰 집으로 이사 가서 방 하나 줄까” 그러신다.

“‘엄마, 괜찮아 괜찮아. 나 서른 살 넘었어’ 하고 버티고 있죠. 동생이 저보다 결혼을 먼저 했거든요. 같이 살았는데 아기가 생기고 하니까 ‘어머니, 저는 생활 사이클도 불규칙하고, 아기도 있는데 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독립했어요. 마지못해 허락하셨죠. 그게 아니었으면 우리 집 분위기에, 불가능한 일이었어요(웃음).”

다시,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에서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사는 건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가족과 함께 살 때도 혼자 있는 게 좋았던 호란에게 자기만의 공간이 생긴 지 3년째, 혼자 사는 집에는 ‘살아 있는 것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

“폐쇄된 공간이 편해요. 구석에 ‘짱박혀’ 있는 것,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공간이 좋았고. 집에 가면 고양이 세 마리가 쪼르르 달려 나와요. 되게 따뜻해요. 샤워하고 나오면 화장실 앞에 조르르 나란히 앉아 있어요(웃음).”

처음 무대에 섰을 땐, 부모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갈하게, 예의 바르게 만들어 내놓는 것에만 익숙했다. 보수적인 가치관과 ‘아가씨 교육’은 여전히 극복의 대상이다.

“어떤 분들은 날것으로 폭발시키는데, 저는 아직도 그런 게 익숙지 않아요. 하지만 호란으로서 오랫동안 살아왔으니까, 지금은 많이 극복했지만 처음에는 힘들었죠. 최수진(본명)이가 좀 그랬어요(웃음).”

‘호란’이라는 이름을 짓고 나서는 가족들에게도 호란이라고 불러 달라고 당부했다. 모범생 ‘최수진’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다. ‘우린 아직 날것의 호란을 본 적이 없다’는 건 이런 맥락이다. 꾸밈없이 폭발시켜 마땅한 에너지를 다듬는 데 익숙한 ‘최수진’보다는 맨발로 숲 속을 달리는 것처럼 본능적인 ‘호란’을 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호란은, 이미 드러난 것보다 보여줄 것이 더 많은 뮤지션이다.

4월 발매된 프로젝트 그룹 ‘이바디’에서 호란은 어쿠스틱 밴드의 보컬로 나섰다. 춤과 어울리는, 차갑고 현란한 전자음 중심의 클래지콰이 음악과는 180도 다른 성향의 밴드다. ‘때때로 그리고 강렬하게 염원’했던 ‘차분하고 진실한 세계’, 영악한 마녀의 가짜 뿔 없이도 아름다운 호란의 내면에 조금은 가까워진 음악이랄까. 단출한 악기 구성에 얹은 호란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솔직하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어요. 완전 어쿠스틱이에요. 가장 기본적인 음악이기도 하고. 편안하게 틀어놓으면 되는 쉬운 음악이니까, 편안하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쿨하고 흥분하는 공연, 그런 것만 있어서야 피곤하지 않겠어요?”
‘이바디’는 ‘잔치’의 순 우리말이다. 호란은 잔잔하고 솔직하게, 새로운 잔칫상을 차렸다.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음악을 기타리스트 거정, 베이시스트 저스틴 킴과 함께 만들었다. 미국의 포크록 가수 애니 디프랑코의 노래에서 공통분모를 발견한 세 사람의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준비 기간, 얼마 안 돼요. 거의 만나자마자 시작해서, 밴드 하자고 한 게 지난 9월이니까, 그리고 앨범 작업 기간은 3개월 정도.”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에서 서른은, 손님이 모두 떠난 황량한 파티 같은 나이다. 호란은 새 밴드를 꾸리고, 조금 다른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다. 진짜 파티는 지금부터다.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정성을 쏟아 만든 음악이에요. 너무 소중한 작업이라, 음반이 잘되고 말고 그런 느낌이 아니에요. 내가 사랑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짝사랑은 슬프잖아요.”

섹시하면서 지적인 건 사실 극과 극에 있는 얘기다. ‘섹시한 금발의 백인 여자는 무식하다’는 식의 편견을 바탕으로 했을 때다. 클래지콰이와 이바디, 일렉트로니카와 어쿠스틱도 극과 극에 있는 음악이다. 자로 잰 듯한 전자음과, 악기 본연의 소리와 목소리만 어우러지는 날것의 사운드 사이의 간극은 크다. 역시 편견을 바탕으로 했을 때다. 하지만 호란은 진심을 간직한 채, 편안하고 여유롭게 세간의 편견을 넘나든다. 자세히 듣고 보면, 옹색하지만은 않은 호란의 진짜 뿔이 보일 수도 있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이주석, 플럭서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