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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웅얼웅얼-Q

사람의 풍화

by q8393 2018. 7. 24.

난 정파를 떠나서 그 사람의 업적이나 살아생전의 좋은 인간미이던 뭐든을 떠나서
정치인의 자살을 썩 좋게 보지 않는다.
물론 인간이기에 인간적인 나약함이 있겠지만 무책임한 태도라고 본다.
더군다나 새내기 정치인도 아닌 몇십년을 그판에 있어온 사람인데도 몰랐다 라고 말하는것은 너무나도 하나마나한 순진한 대답이다.
당연히 모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런 일이 있고 나면 우리나라처럼 정치인이 종교지도자 내지는 무슨 아이돌 스타처럼 떠받들여지는 사회분위기에서
그로인해 단순한 개인적인 애도 이상의 이상한 옹호의 말들이 나오고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는 여론이 형성된다. 이것은 전혀 긍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런식으로는 이 사회가 절대 진보하기 힘들다. 수많은 유사한 반복만 낳을 뿐이지.

이와중에 경기고 인연을 얘기하는 박원순은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
돈을 건냈다는게 바로 그 경기고 동기라는 사람 아닌가?
그놈의 학연 지긋지긋하다. 옛날 어른들 여전히 말만 하면 대학은 물론이고 경기고 출신이냐 서울고 출신이냐다.
이를테면 소위 진보가 이런데서도 못벗어나고 있으니 이런일이 안날 수가 있나. 한심하다.
도대체가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는 인간들이다. 그러고 돌고 돌뿐이다.
적당히 적당히, 온 나라 전체가 하나같이 내일, 우리편이 되면 그냥그냥 넘어가고, 다 그정도는 있을 수도 있는 일이고.
이런 얘기를 바로 가까이에서 부터 듣는데, 지겹다. 환멸스럽다는 말이다.
내가 이 나라 정치판이, 이 사회가 들여다보기도 싫은 이유다.
비판하는 놈이나 비판 받는 놈이나 다똑같으니까.

이와중에 유시민에 대한 찬사와 걱정은 또 뭔가?? 싶어 보니,
정의당 창당부터 같이 하면 정의당을 이끌어온.
그러치 참.
결국 그때부터 어쩌면 오늘은 예정되어 있었던건지도.
마치 아래 기사처럼.
바위의 풍화. 적절한 비유다.
다만 뒤늦게라도 (너무 뒤늦게) 그 부끄러움을 알았고, 자신이 풍화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
그나마도 노회찬이 그판의 다른 인간들보다 일말의 양심이 있었고, 마지막 인격까지 저버리지는 않은 것이다.
괴물이 되기 전에 죽음을 택한.

- 유시민이 다음 타자가 되면 어쩌냐니 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책 가판대를 다 뒤덮은 자기 베스트셀러 책들 잘 팔면서 평생 잘먹고 잘 살것이다. -



노회찬과 주대환을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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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3월 07일 04:15 오후

아프고 나니 소심해진다. 남들에게 모진 소리 했던 게 후회스럽고, 얼마 살지도 모르는데 어지간하면 둥글둥글 지내자는 생각이 아침 저녁으로 사무친다. 민주노동당으로 간 노회찬, 민주당으로 간 주대환이 잘 되길 빌기도 한다. 기왕에 욕 먹으며 어려운 발걸음 뗐으니 국회의원 자리든, 남루하지 않은 삶이든, 우회로든 소망했던 바 성취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가 신병에 눈가 짓무른 연약한 사내가 두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두 사람을 따라 20년 같은 길을 걸었던 후배이자 동료로서는, 공적인 입장에서는 두 사람에게 좋은 소리를 못 해주겠다. 몇 자 남긴다.

노회찬, 주대환 행보의 옳고 그름은 그들이 국회의원이 되느냐 마느냐에 의해 판가름 나지 않는다. 그들의 옳고 그름은 국회의원이 된 그들이 독립적 진보정당 노선으로 돌아올 때에만 증명될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노회찬과 주대환이 ‘복귀’를 통해 자신들 선택의 올바름을 증명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떠나는 사람 누구든 우선 살고 보자고 변명한다. 지금은 비록 떠나지만 변하지 않고 금의환향하리라 다짐한다. 이부영, 장기표, 이재오, 김문수, 김근태, 장명국, 서경석, 이창복이 그렇게 호언하며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성공했든 실패했든 돌아오지 않았다. 떠난 이들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립되고 아직껏 반박된 적 없는 경험적 진리다.

떠난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그들이 경계선을 넘는 과정에서 진보정당으로 돌아올 이유를 잊을 만큼 풍화되기 때문이다. 바위는 세월에 풍화되지만, 사람은 경계에 의해 풍화된다. 진보정당에 있으면 진보정당의 노선을 신봉하지만, 보수정당에서는 ‘보수’의 논리에 몸을 싣는다.

바위는 풍화되어도 그 물리적 형태만 변모할 뿐이지만, 사람은 화학적 성분이 변질된다. 그 사람의 이념과 정책과 문화와 소신과 언행이, 처한 곳의 향취에 젖는다. 이것이 돌의 물리학과 인간 유물론 사이의 차이다.

의사들은 내게 25%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의사들 입장에서야 낙관적이기 어렵겠지만, 살아오면서 그처럼 커다란 확률을 잡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로또 맞은 것처럼 기쁘다.


지금 진보정당이 처한 상황 역시 비슷한 것 같다. 패퇴와 낙오, 변절과 이탈, 재창당을 거듭해온 진보정당사(史)에서 진보신당과 사회당처럼 그럴싸한 진지를 가지고 재기를 시작한 적은 없다. 지금의 진보정당 고수 세력은 진보정치연합이 국민승리21을 만들려 할 때보다 적어도 열 배나 백 배쯤은 크고 강하다.

제 한 몸 살리겠다고 불량배의 사타구니 밑을 기는 것은 일시의 모면책일 뿐이다. 잔도를 불사르고 파촉(巴蜀)에 깃드는 것만이 장래의 출사를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독립적 정치세력임을 흔들림 없이 천명하고, 작은 영지(領地)나마 소중히 가꾸어 나가는 것이 현단계 진보정당운동의 과제다.

이제 한 시대가 끝났다. 군부독재가 잉태한 학생운동 리더들, 그들의 노동 현장 이전, 그들의 신노선, 그들의 민주노동당이 문을 닫았다. 그들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에 투항했다.

내게 주대환과 노회찬은 과학이었다. 나는 그이들의 권능을 믿고 추종했다. 그 ‘과학’이 더 이상 과학이기를 거부함으로써 나는 내 시대의 과학으로부터 벗어났다. 다시금 20대 때와 같은 시적(詩的) 혼돈의 시대로 회귀했다. 이태리 시인 잠바티스타 마리노는 “기적이야말로 시인의 목표다”라고 갈파했다. 나는 암흑 속으로 돌진한다.

* 이 글은 진보신당의 인터넷 기관지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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