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 웅얼웅얼-Q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by q8393
201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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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25 호 |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
김 정 남 (언론인) |
지난 9월 20일, 법무부가 교도소 수형자들이 외부에 편지를 보낼 때 봉투를 열어둔 채
교도소 당국에 제출하게 하는 이른바 서신검열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 2월, 헌법재판소가 감옥에서의 서신검열제도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만시지탄이 있는데다 일부 예외규정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서신검열제도의 폐지는 일단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2년 조선총독부의 ‘조선감옥령 시행규칙’으로부터 시작된
서신검열제도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도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로 승계되어 그대로 존속되어 왔다. 이후
이승만 백색독재와 박정희∙전두환의 30여 년에 걸친 군사독재기간에는 물론 언필칭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증거인멸, 범죄교사 등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계속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1백년만에 비로소 바로잡아지는 개정안을 놓고 한번쯤 감옥을 살아본 사람들에게는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감옥에서 서신검열을 거치지 않고 교도관 등을 통하여 비밀리에, 밖으로 편지를 내보내는
것을 가리켜 감옥 안의 은어(隱語)로 ‘비둘기 날린다’고 말한다. 1975년 김지하의 양심선언이 비둘기를 통하여 작성,
반출되었고, 1987년 영등포 교도소에서 이부영이 내게 보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 조작되었다”는 내용의 편지 역시
비둘기였다. 한승헌은 건빵 봉지의 비닐에 못으로 눌러 쓴 편지를 밖으로 비둘기 날린 일도 있었다. 비둘기의 작성과 그 날리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서신검열을 통해 나온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가운데도 주옥 같은 글들이 많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정수일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김대중의 「옥중서신」,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서준식의
「옥중서간집」등이 바로 그것이다. 언제 다시 읽어도 항상 새롭고 깊은 울림을 주는 글들이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이 가을에 특히
권하고 싶은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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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과 정수일의 옥중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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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여름, 나는 감옥에 있는 신영복이 그의 가족들에게 보낸 봉함엽서로 된 편지
뭉텅이를 받아 보았다. 아버님, 어머님, 형수님, 계수씨, 그리고 더러는 우용이 주용이 등 조카들에게 보낸 글들이었다. 그
편지에는 청정한 영혼, 수기(修己)로 다듬어진 가지런한 몸가짐, 조용한 달관, 절제된 감정이 담담하게 펼쳐져 있었다. 편지의
글씨는 정갈했고 글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나는 그 편지를 내가 책임맡고 있었던 「평화신문」에 4회에 걸쳐 연재했고, 마침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펴냈다. 책의 제목도 내가 지었고, 그 책의 서문도 내가 썼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C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정수일은 옥중편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옥살이란 막히고 닫힌 세상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단조롭고 호젓한 일상의 반복이지만, 살다 보면 옥 담 너머의 사람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마음의
소식’(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을 알리고 싶은 충동을 가끔 받곤 한다. 잊혀가던 추억이나 향수, 즐기던 명시나 잠언, 뜨락의 한
포기 풀이나 꽃, 두둥실 떠 있는 달, 흘러가는 시간, 송구영신 등 극히 예사로운 일들이 이러한 충동의 계기가 되는 것이 또한
옥살이다. 그래서 종종 편지를 쓰게 되는데, 쓰게 되면 심란하기도 하지만 후련하기도 하다. 이것이 아마 옥중편지만의 속성인 듯
싶다.”
다음은 편지의 일절이다. “올해는 정축년 ‘소의 해’요. 한때 황황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이 ‘소의 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牛步千里), 즉 꾸준한 노력으로 성과를 이룬다는 이
성어를 반복하고 음미하면서, 우리는 이제 충격과 비탄에서의 허둥거림을 그만두고 황소처럼 묵직하고 침착하게 앞만 내다보면서
나아가야 할 것이오. 하나하나를 새로이 출발하고 새로이 쌓아간다는 심정과 자세로 과욕이나 성급함을 버리고 천리길에 들어선 황소처럼
쉼없이, 오로지 앞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할 것이오. 그럴 때 우리의 믿음, 우리의 의지, 우리의 희망, 우리의 모든
것이 참말로 ‘소가 밟아도 깨지지 않게(牛踏不破) 굳건히 다져지고 꿋꿋해질 것이오.”(「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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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남 |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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