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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취향나름

[이상]李箱 김해경

by soulfree 2017. 9. 24.

정식·4 

너는 누구냐
그러나 문 밖에 와서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라고 외치니
나를 찾는 일심이 아니고
또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한들
나는 차마 그대로 내어버려 둘 수는 없어서
문을 열어 주려하나
문은 안으로만 고리가 걸린 것이 아니라
밖으로도 너는 모르게 잠겨있으니
안 에서만 열어주면 무엇을 하느냐
너는 누구기에 
구태여 닫힌 문 앞에 탄생 하였느냐                                               
(내가 보기 편하려고 임의로 행 나누기와 띄어쓰기를 함. ^^;;;;)

+
내가 이상 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해 준...
내가 이상을 단숨에 좋아하게 했던 시.
중학교 예비 소집일 이었던가?
쌀쌀한 날씨, 꽁꽁 언 운동장 바닥에서
눈 속에 반쯤 파뭍혀 있던 손바닥만한 시집을 주웠었다.
시 라고 해봐야 10개 남짓 있는,
시 보다는 예쁜 요정 그림같은게 더 중요한 포인트 였던, 그런 팬시 문구 상품속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저 시가 들어 있었다.
'닫힌 문 앞에서 탄생'한게 무엇이었을까?
그 당시에... 신부님을 지나치게 좋아하던 친구들을 보면 저 싯귀가 생각나곤 했었다. ^^
그리고 이런 시도 있었지. ^^


이런 시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선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 날 밤에 한 소나기하였으니 필시 그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 보니 변괴(變傀)로다, 간데 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 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더라.


내가 이 시에서 가장 강렬하게(?) 받아들인게
아마도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 알면서도 ~ 내내 어여쁘소서" 싯귀였겠지만...
어쨌든 이 시에 홀딱 반했더랬다.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라니...
저 촌스러운 직진 고백이라니...
내내 어여쁘소서 라니!!!! ㅜㅜ
글자 그대로 시를 받아들이던 중1~2 시절의 내게 이상의 시 만큼 매력적인 시는 드물었었지.

여중생들이 더러 그러듯이 아마도 나 역시 요절한 천재들에 대함 동경 같은게 있었나보다.
뭐... 나 역시 30살 이상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난 천재가 아니어도 '어른'이 된다는 자체가 뭔가 끔찍한 기분이어서
'어른'이 되기전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많이 했던것도 같다.
뭐... 여하튼....
저 시 들을 좋아한 덕분에
중 1때 부터 친구들에게 카드나 편지를 보낼때 '내내 어여쁘소서" 라는 말을 많이 쓰기도 했었지....

고등학교땐 3년 내내 학생증에 저 이상의 사진을 증명사진 사이즈로 그려서 붙여서 다니기도 했었고

이 사진을 그리고 "데미안"의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구절을 적어 책상 유리 사이에 끼워놓기도 했었지...

오늘
알라딘 중고서적에 갔는데
익숙한 이상의 사진이 벽면에 붙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깜빡 시간 여행을 했더랬다.
모모도 보고
네버앤딩 스토리도 보고...

루이제 린저, 박인환, 릴케, 전혜린, 카프카, 김소월, 이상, 포스터 등등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동경했던
요절한 천재들의 작품과 전기들을 찾아보고는
혼자 피식피식 웃었더랬다.
난 그들이 산 시간보다 적어도 10년은 더 살았는데~~ 메롱(?)
이러면서...

한편으론 몹시 아쉬울 때가 많다.
그들이 30대를 맞이하고 4~50대를 맞이해선 또 어떤 작품들을 쏟아냈을까 생각하면...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