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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ter Me/나혼자 웅얼-2009

숫기없는 삼남매

by soulfree 2009.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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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면 터미널에서 개심사, 간월암 가는 방법을 물어보고 다니다 문득 생각이 났어.
오래오래전 우리 삼남매끼리만 외가를 갔던 때가...

오빠와 나 모두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그때는 이리역이었던 지금의 익산역에서 내려
부모님은 제사때문에 친가로 가셔야했고 우리는 놀기좋은 외가로 가겠다고 했던적이 있었지.
부모님은 연신 너희끼리 갈수 있겠느냐고 걱정을 하셨었지만
오빠가 호언장담하며 갈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서 처음으로 우리끼리만 외가를 가게되었던 날이었어.

버스를 타고 황등을 지나 입점리 큰 나무앞에서 내려야 하는데
마을마다 큰 나무가 있는곳이 몇군데 있어서 헷갈리니까 버스탈때 꼭 버스기사 아저씨나 차장아저씨에게 내릴곳을 말하고
내릴곳이 되면 알려달라고하라며 우리에게 여러번 강조하셨었었지.
나는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고 숫기가 없었으니까 제쳐놨었지만
잘 나서고 쾌활했던 은진이도
천하의 개구장이었던 오빠도
그때만큼은 어쩜 그렇게 숫기가 없었는지... ㅡㅡ;;;;
우리는 우물쭈물하다가 차장아저씨에게 말을 하지 못했고
우리끼리 눈대중으로 여긴가저긴가 하다가 결국 내릴곳에서 내리지 못하고 2정거장 정도를 지나쳐서 내렸어.
시골버스여서 굳이 정류장이 아니어도 그냥 세워달라고 하면 서서 승객을 내려주고 다니던 버스였었는데
우리는 내릴곳을 지나친줄 알면서도 버스 세워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그냥 발만 동동구르며
버스가 다음 정거장에서 서기를 기다렸다가 내리느라 더 많은 거리를 지나쳤었지.

낯선동네 허허벌판 한가운데 내려서 느꼈던 그 막막함이란... ㅡ.ㅡ;;;;;
어차피 깡~촌의 큰길이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우리가 지나쳤던 거리만큼 버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걸어가는데
우리로선 완전군장 행군의 수준이었달까? ^^
날씨는 춥지~
방학숙제거리니 옷가방이니 짐은 하나씩 들었지~
은진이는 다리아프다고 징징 울면서 업어달래지~^^;;;; 배는 고프지~
나도 딱 울고싶은 상태였는데 우는 은진이를 업어주기도 했다가 달래기도 했다가
눈물찍~ 콧물찍~하면서
거의 한시간 반 가까이를 걸어걸어서 외갓집을 갔었어.
그때 그렇게 힘들게 걸어갔던 그 길이 어찌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지...
때로는 갈대밭을 지나기도 했고 때로는 으스스한 숲길을 지나기도 했고
하늘에는  철새들이 V를 그리며 날아갔고
바람이 그렇게 찬데도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었던...

셋 중 한명이라도 도움을 청하는 말만했음 됐을텐데
'입점리에서 내려주세요'하는 말 한마디를 못해서 그 고생을 했었다니...^^;;;;
지금으로선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지.
그땐 어쩜 그렇게 셋 다 숫기가 없었는지...
생각해보니까 은진이나 오빠도 또래들 사이에서나 장난치고 쾌활하지
낯선 어른들한테는 말도 못붙이는 빵구똥구들 이었던게야. ㅡ.ㅡ;;;

외가 동네에 드디어 도착해서는 오빠가 "우리가 버스에서 잘 못 내렸었다는걸 어른들이 알면 다시는 우리끼리 외가에 못가게 할테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자"고 했고 우리셋은 꼭 비밀로 하자는 약속을 했어.
외할머니께선 버선발로 뛰어나오시며 왜이렇게 늦게 왔냐~
은진이는 왜 울고 왔냐~ 너네 왜이렇게 땀흘리고 왔냐~ 행색이 왜이러냐~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으시는데
우리 삼남매는 무슨 큰 비밀을 공유한양 서로 입을 막고 비장한 눈빛을 주고받고 했었지.
그 일을 처음으로 입밖에 냈던게 아마 20대 후반쯤이었을까?? ㅋㅋㅋ

점심때 밥먹으면서 오늘 함께 여행갔던 친구에게 저 얘기를 해줬더니 어찌나 웃던지~^^;;;;
"아니 너네 삼남매가 그랬었다고??? 말도 안돼!!!"
뭐 이런 반응? ㅡ.ㅡ;;;;;

여행한다고 다른데 헤매고 다닐게아니라
외가 동네를 다시한번 가봐야겠다.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로는 한번도 안가봤는데... ㅡㅜ

어른들은 고분 전시관 때문에 동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큰 길이 나서 동네버렸다고 하시지만
금강에 둑을 만드는 바람에 강이 아니라 저수지가 되어서 물도 썩고 철새도 줄었다고 쯔쯔 거리셨지만
웅포 덕양정에 가서 큰 나무도 보고 그 아래 물줄기도 보고
예전처럼 그 앞 갈대밭에 앉아서 음악도 듣다 오고싶어지네...
비록 어릴적에 감탄해 마지않던 덕양정 아래로 보이던 회오리치는 물줄기는 없어졌겠지만
그 근처의 빈 초가집들도 없어졌겠지만...
그래도 내가 떠올리는 고향의 이미지는 늘 외갓집 동네라서 말이지...
어릴적에 꼭 외갓집에서만 살았던 아이처럼
일상을 지냈던 우리 동네보다 방학때나 명절때 잠깐잠깐 갔었던 외갓집이
내가 기억하기 좋아하는 유년시절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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