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생활하고 있다.
화초를 키우며
청소하며
일하며
말없이
소리내지않고
표현하지않고
있는듯 없는듯
그러나 존재하고 있는 그녀가 살아가고 있다
가끔씩 화가나고
가끔씩 짜증도 나지만
표현할 대상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저... 모호하다
누구에게 무엇에 화가 난건지 화가 나는건지조차 모호하다
슬픈것 같은데 슬프지않고
화난것 같은데 화내지않고
궁금해하는것 같은데 궁금해하지않는다그녀의 생활습관은
그저 '삭힌다' 내지는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그러다 가끔씩 멍~해 있다
화분밑받침으로 쓰인 헌책에 불현듯 돌아가신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취객을 보듬어주다 불현듯 남편과의 첫날밤이 떠오른다
처음 섹스했을때의 느낌을 말해보라던 남편의 말에
열 다섯살때쯤 고모부에게 강간당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하필...! 그 강간당했던 기억이 마치 그녀를 이해하는 결정적 키워드인양 나와버렸다
그게 참 그냥 그려러니 넘기기도 어색하고
저게 정말 키워드일거라고 인정하기도 어색한... 좀... 그렇다...
그 사건(ㅡㅡ;)이 그녀의 폐쇄적인 성격에 어느정도의 영향을 미친건지
아님 원래 폐쇄적인 성격이었던건지
그 사건(ㅡㅡ;)이 그녀의 이성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건지
아님 원래 그녀는 조금 남다른 이성관이 있었던건지
그녀는 남편이 그냥 싫었던건지 아님 그 기억을 극복할수 없던건지
알수가 없다...
그저 이러이러하지 않았을까 짐작할뿐...
그래서 그 기억이 지금까지도 고모부를 죽이고 싶을만큼 밉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래서 새벽 조깅길에 칼부림을 결심할만큼 증오와 고통이 증폭되었을까?
그녀의 감정이 어떠한지 어떤 마음인지 알수가없다
그저 내가 '이러지않았을까?'하며 나름대로 상상할뿐
영화속에선 그 흔한 일상체 대화조차 드물다.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인양... 마치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지말라는양...
나중에... 나중에서야...
무수한 지루함과 갸우뚱을 포기할때쯤에야
정성스레 고양이밥을 준비하고 사람을 초대하고 돌아가신 엄마를 기억하며 아파하는듯한...
표정의 변화가 드문 그녀의 작은 표정하나 몸짓하나에 '이해'가 아닌 '공감'을 갖게된다
보면서 처음엔 지루하다가 궁금해하다가
어느순간 나도 무명의 정혜처럼 궁금한것도 없어지고 화나거나 답답한것도 아무렇지않게 '삭히고' '잊는다'
그러다 구두가게에선 내가 정혜인듯이 살짝 짜증이 나고
저녁약속에 오지않은 남자를 기다리고 체념을 하게되고
뚱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거리를 걷고 취객을 쓰다듬고
칼을 숨기고
울고
그런다...
급기야는 공공 화장실에서 주체하지 못하고 터진 소리죽인 울음을 같이 체험하는 기이한 현상이 온다.
'살아간다'기보다 그저 주어진 삶을 마지못해 아니... 힘에부쳐 혹은 감당하기조차 역겨워 주억거릴망정
마다하지않고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낼'뿐인것 같은 그녀의 영화속 삶이...
뭐 저런 답답하기 그지없는 생활이 다 있나 싶은 그녀의 삶이
영화를 보는 동안엔 마치 나의 일상인양 착각하며 그녀의 감정이 내게도 전이가 된다.
왜 그녀의 상처가 하필 이젠 너무 흔해진 미성년자 성폭력에 관한거냐고
너무 예상가능한 범위라 식상하다고 그러면서도
저렇게 소통의 부재속에 스스로를 방치한 그녀라 별로 감정이입이 안된다고 그러면서도
이런저런 불만족스런 투덜거림을 계속계속 내뱉으면서도
그녀의 울음이 쉽사리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 얼굴에 뭍은 속눈썹이
길거리 허름한 치킨집들이
골목골목에서 목격되는 도둑 고양이들이
자꾸만 그녀, 정혜를 떠올리게한다
감정을 안으로 삭히는 습관을 가진 그녀의 무표정한 일상들이 자꾸만 나를 따라다니는것 같다.
어딘가 나의 일상속에도 그녀의 일상이 숨겨진 껌처럼 붙어있는것만 같다.
http://sum.freechal.com/soulfree/1_3_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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