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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소식통

탄광촌 화가’ 3년 만에 나들이/연암 박지원이 쓴 목민서 '칠사고' 발견

by q8393 2010. 2. 2.
탄광촌 화가’ 3년 만에 나들이
[경향신문] 2010년 02월 01일(월) 오후 05:43   가| 이메일| 프린트
ㆍ황재형 개인전… 5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탄광촌 화가’ 황재형(58)이 3년 만에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다. 5일부터 열리는 개인전에서 태백의 자연과 경관, 탄광촌 사람들의 삶을 그린 60여점을 선보인다.

황재형 ‘산허리 베어물고’(캔버스 혼합재료, 162.2X112.1㎝ <1997~2003>) | 가나아트센터 제공
“광부의 집, 바닥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 나무로 만든 욕실용 슬리퍼 하나도 사사로이 보이지 않아요. 무심한 사물의 존재감이 내게 다가와요. 아무 데서나 들썩 주저앉아 기쁘게 그립니다.”

1일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황씨는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그는 “예전에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걸 방해하면 ‘정신 사납다’고 내쫓았는데, 요즘은 그리는 걸 멈추고 같이 놀곤 한다”고 했다.

황재형은 1982년 민중미술 단체 ‘임술년’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공장노동자, 야학교사 활동과 그림을 병행하다 83년 돌연 태백으로 갔다. “서울에서의 화가 행세는 매양 헛짓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태백으로 가서도 탄광촌 사람들의 모질고 힘든 삶을 화폭에 담아왔다.

황씨는 “(민중미술을 하던 때) 철학과 예술의 시발점은 노동이라고 알았다. 사회주의 사상과 상관없이 노동이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80~90년대 탄광촌에 사는 사람들을 근접 촬영하듯 얼굴 근육과 이마의 주름, 땀방울을 냉철하게 담아낸 리얼리즘 작가였다.

2007년에 이어 올해 선보인 작품들도 사람과 풍경에서 한발짝 물러선 ‘관조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태백과 탄광의 현실과 리얼리즘이 캔버스에서 온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현실에 대한 직접적 발언은 줄었지만 2000년 중반 들어 주목한 ‘풍경’에도 탄광촌의 고단하고 을씨년스러운 삶의 분위기가 깔려 있다.

개인전 제목인 ‘쥘 흙과 뉠 땅’은 84년 첫 개인전 이후 줄곧 사용해왔다. “쥘 흙은 우리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뉠 땅은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 대한 문제를 말하는 겁니다. 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는 현실말입니다.”

‘쥘 흙’과 ‘뉠 땅’에 대한 문제 의식은 재료 선택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전국 곳곳에서 수집한 흙 50여종에 모래와 톱밥, 석탄 가루를 재료로 이용한다. 80년대 유화 물감 살 돈이 없어 마련한 궁여지책의 재료이기도 했지만, 그는 “우리 흙은 본질적 생명력이 있다. 흙은 담담하고 차분하며 정직, 소박한 색”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8일까지.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연암 박지원이 쓴 목민서 '칠사고' 발견
[연합뉴스] 2010년 02월 01일(월) 오후 05:40   가| 이메일| 프린트
김문식 교수 "박지원에게 목민관 측면 있어"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조선 후기 북학파를 대표하는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친필로 쓴 목민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단국대 소장 연민문고에서 박지원이 쓴 '칠사고(七事考)'를 발견했다"며 "문장가이자 농학가였던 박지원에게 목민관이라는 또 다른 측면이 있었음을 주목하게 하는 자료"라고 1일 말했다.

'칠사고'는 박지원이 충청도 면천군수로 있으면서 작성한 글을 모은 '면양잡록(沔陽雜錄)' 가운데 포함됐다. 작성된 시기는 군수로 재임한 1799년 5월부터 1800년 8월 사이다.

'칠사고'는 경국대전 규정에 나오는 '수령칠사(守令七事)', 즉 수령이 해야 할 7가지 업무에서 나온 제목으로 '수령이 해야 할 일을 고찰하는 서적'이라는 뜻이다.

'칠사고'는 박지원이 '목민고'와 '자치통감' 등 각종 서적을 읽으면서 필사한 목민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김 교수는 "'칠사고'는 여러 서적에서 자료를 뽑아 편집한 것으로, 완성된 저작으로 가는 중간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완전한 저작이 되려면 서문과 목차가 추가되고 본문의 체계화가 이뤄지고 박지원의 견해를 밝힌 '안(按)'이 추가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조선시대 저작이 자료를 사출(寫出)해 편집하는 데서 시작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박지원의 저작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박지원이 '칠사고'를 편집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경험을 반영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원은 책에서 지방 토호들이 관리와 결탁해 환곡을 받아먹고 도망자로 처리해 버리는 폐단을 언급하면서 안의현감 시절의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또 '칠사고'에서 각종 장부를 철저히 정리할 것을 강조했는데 그의 농서인 '과농소초(課農小抄)'에는 연천군의 토지와 수확량 등을 굉장히 정확히 적어 관직 경험과 책 내용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칠사고'의 특징을 4가지로 정리했다.

▲사대부 출신의 수령을 위한 지침서라는 점 ▲각종 공문서를 철저히 관리하고 재화의 이동은 업무상 관련자들이 공동으로 감독하게 했다는 점 ▲환곡과 군정의 운영을 향촌의 기본단위인 통리를 기준으로 삼은 점 ▲서양의 수차(水車) 제도를 도입하자고 한 점이 그것이다.

그는 "박지원은 문장가로 유명하고 북학사상이나 농학에도 관심을 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면서 "그러나 관리로서의 측면은 부각이 안 됐다. 수령을 지낸 사람이 농서뿐만 아니라 목민서도 썼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칠사고'는 '면양잡록' 가운데 제6책 후반부와 제7책에 동일한 내용이 각각 실려 있다.

제6책 후반부에는 대부분 초서체로 돼 있는데 김문식 교수는 필체 등으로 미뤄 박지원의 친필일 것으로 추정했다. 박지원이 각종 서적을 읽으면서 목민과 관련된 내용을 초록해 빠른 속도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제7책은 해서체인데 제6책 후반부의 것과 동일한 내용인 것으로 보아 박지원이 작성한 내용을 다른 사람이 다시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교수는 '칠사고'에 대한 상세한 연구 결과를 5일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주최로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열리는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다. 연민문고 소장 자료에 대한 연구성과를 알리는 자리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김명호 서울대 교수가 '열하일기' 필사본에 대해, 김영진 계명대 교수가 박지원의 산문집에 대해, 허경진 연세대 교수가 이가원 주석본 '구운몽'에 대해서도 각각 발표할 예정이다.

kimyg@yna.co.kr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