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The hours)'같은 영화인줄알고 개봉기다리고 있었는데 운좋게 시사회로 보게된 영화...
영화보고 나오면서 투덜거리던 말
" 에잇~ 어정쩡해
우울한것도 아닌것이 진짜 어정쩡하다! 아 찝찝해~
대체 뭐야!
그래서 저 여자가 시가 쓰고싶었다는거야 뭐야?
시를 쓰고싶긴 했던거야?
지가 시인이라고 말만하면 뭐해~ 지가 써볼라고나 했냐고~
저런 핑계는 누가 못대? 아줌마들 다 저러고 투덜거리면서 살잖아~
글구 애들은 어쩌라고 저러고 죽냐??
실비아도 웃기구 테드두 웃기구... 참나...
뭔 의부증 환자의 일생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아...
영화를 보고나니 실비아란 시인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싶어서 인터넷을뒤지게 만들던 영화...
시인이란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듯하면서 시가 안써지면 빵으로 육아로 아빠의 망령으로 사랑이라는 집착으로 도피하는 여인네를 전기영화로까지 만들진 않았을거아냐!!!
영화에서 제대로 왜곡시킨것같은 실비아란 여인네의 정체가 궁금해지더란 말이지... ㅡ..ㅡ
마치 결혼과 육아가 고학력 여성의 자아찾기에 최대의 적인것처럼 표현하다니...
게다가 마치 남편의 탓도 사회의 탓도 아닌... 실비아 스스로가 시가 안써지니까 난동부리다 자살한것처럼 묘사되다니...
아빠 아빠 개자식들
이 부분을 들으니 언젠가 읽은듯한 기억이 있기도한데... ㅡㅡa
실비아 플라스라는 인물의 정보를 검색하다보니 영화에 대해 더 화가 나더군...
어떻게 이런 시인을 저렇게 표현한걸까...
강렬함과 나약함이 구분은 제대로 했어야하지 않을까...
시가 안써져서 방황할때의 모습조차 스스로에 대한 자학이라기보다
정말 하기싫은일 억지로 해야된다는 의무감에 짜증을 내는 어린애같았다.
물론 삶이 녹록하진 않았겠지...
하지만 그녀의 감정도 심리상태도 제대로 표현이 안된채 뜬금없이 광기어린 모습이 나오거나
또 뜬금없이 시를 낭독하는 모습이 나오는건... 정말... ㅡㅡ;;;;;
더 코믹한건... 영화와 전혀 어울리지않은 개봉 포스터!!!
진짜 실소를 금할길 없더군...
왠 화사한 연두빛?
차라리 피빛이라면 실비아라는 인물에게 어울리기나 하지...
실비아 플라스와도 어울리지않고 영화와는 더더군다나 너무 따로노는 해사하게 웃는 기네스 팰트로와 노랑연두빛 화사한 포스터라니... ㅡㅡ;;;;;;;;
진짜 너무하다...
참! 시를 낭독할때 그 리듬을 타던 운율은 참 듣기 좋더라는... 그 말은 하고싶네~^^
여름 휴가를 보내던 바닷가...
보트타고 바다로 떠밀려 갔을때 시가 안써진다던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대사들이 참 좋았다네...
여러모로 아쉽고 아쉬운 영화...
자료출처 : yes24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1373521&CategoryNumber=001001017002002
||| 실비아 플라스 Sylvia Plath
1932년 10월 27일 매사추세츠에서 보스턴대학의 생물학 교수이자 땅벌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오토 플라스와 아우렐리아의 딸로 태어났다. 1950년 장학생으로 스미스여대에 입학한 실비아는 이미 400편이 넘는 시를 썼으며 1952년 8월 『마드모아젤』 지 공모전에 단편 『민튼 씨네 집에서 보낸 일요일』이 입상하면서 작품이 게재되었고 1953년부터 『마드모아젤』의 객원편집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이때의 경험은 1963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 『벨 자 The Bell Jar』에 묘사되어 있다. 1955년 스미스대학을 졸업한 실비아는 풀브라이트 스칼라십으로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했다. 1956년에 영국의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하여 1957~58년까지 모교인 스미스대학에서 영문학 강사로 재직했다.
1960년에 실비아의 첫 번째 시집인 『거상 The Colossus』이 영국에서 출판되었는데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대단히 정교하고 치밀하게 씌어졌으며 실비아의 고독한 인생의 미로를 명백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아들 니콜라스가 태어난 해인 1962년 10월부터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 실비아는 이 무렵 한달에 서른 편의 시를 써내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1963년 2월 11일 가스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자살함으로써 참혹한 비극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The Journals of Sylvia Plath)
1963년 출간된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가 1960년대 초 미국에 불기 시작한 페미니즘 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저서였다면, 한 해 전 신문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은 그 기류에 불을 당긴 사건이었다. 서른 한 살의 전도유망한 시인이자 남편 '테드 휴즈(영국의 계관시인)' 사이에 딸과 아들 하나를 둔 아름다운 금발의 여류시인 '실비아 플라스'. 하지만 1962년 2월, 그녀가 가스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자살한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많은 이들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옆방에서 노는 두 아이의 우유와 빵을 챙겨두고, 가스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문틈을 테이프로 꼼꼼하게 바른 후 치밀하게 감행된 이 자살극은 곧 '고급 연속극 같은 매혹'으로 대중을 사로잡았고, 이후 그녀는 1960년~1970년대 사이 폭풍처럼 일어난 여성 해방 운동의 신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당시 별거 중이던 남편 테드 휴즈는 '실비아 플라스의 살인자'라는 오명과 외도로 상징되는 '폭압적 남성성'의 상징으로 낙인찍히며 각종 강연이나 시낭독회 마다 시위대를 팬클럽처럼 몰고 다녀야 했으며, 실비아 플라스의 무덤 묘비명에 새겨진 남편의 성(姓) '휴즈'는 분노한 실비아의 추종자들에 의해 계속 지워지는 수난을 겪었다.
1950년부터 1962년 겨울까지 써내려간 그녀의 일기 모음인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그간 신화와 베일에 싸여 과장 혹은 오해되어 온 실비아 플라스의 실체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일기에는 여성성에 눈뜨기 시작한 사춘기 시절의 팽팽한 감수성과 불균형에서부터, 결혼 이후 가사와 남편의 그늘에 얽매여 시간에 쫓기며 창작의 의지를 끊임없이 다짐하던 시인의 고뇌와 갈망까지, 그녀의 육성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이 책은 남편 테드 휴즈와 편집인 프랜시스 맥컬로가 원고의 2/3를 생략하고 출간한 1986년판을 원본으로 하고 있는데, 테드 휴즈는 그녀의 일기를 검열하고 또 마지막 일기 한권을 파기했다고 스스로 밝혀서 또한번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199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죽은 아내에 대한 아름답고 고통스런 마음을 토로한 서정시집 <생일 편지>를 발표함으로써 평생 동안 그를 따라다니던 '실비아 플라스'의 무게를 어느 정도 덜어 냈다. 비슷한 그 시기, 가감없는 완간본 또한 출간됐으나 기대와 달리 새로운 사실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2003년 영국의 BBC는 미국 자본과 손잡고 휴즈와 플라스의 생애를 다룬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에 휴즈 부부의 딸 '프리다 휴즈'는 어머니의 신화를 끊임없이 재생산 및 소비하며 '자살 인형'의 페티시라는 일회용 오락물로 전락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며 또 한차례 화제를 몰고 왔다.
||| 관련자료
신화의 베일에 갇힌 한 여성 시인의 생생한 육성
실비아 플라스만큼 “신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존재가 또 있을까.
아름다운 금발의 유망한 미국 여성 시인이 핸섬한 당대 최고의 천재 영국 시인과 결혼하면서 시작된 현대 영미문학계 최고의 황금빛 로맨스는, 플라스가 남편인 테드 휴즈의 외도와 그에 따른 별거 이후 100년 만에 찾아온 런던의 혹한 속에서 우울증과 생활고에 홀로 시달리다가, 옆방에서 노는 두 아이가 배고프지 않도록 우유와 빵을 놓아두고 가스가 아이 방으로 새어 들어가지 않게 꼼꼼하게 문틈에 테이프를 바른 후, 가스 오븐에 서른 살의 젊디젊은 머리를 처박고 자살을 한 바로 그 순간 완벽한 악몽이 되어 참혹한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여성해방운동의 신화적 순교자의 반열로…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은 그 이름과 함께 수많은 맥락을 타고 신화로 재창조되었다.
있는 그대로 아무런 의미도 투사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개인적 비극으로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도 상징적이었기에 이 사건은 일약 전설의 반열에 올라 한없이 재생산되고 소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의 신화는 평단과 대중의 매혹에 반사되고 증폭되어, 자연인 실비아 플라스의 진실과는 무관하게, 추상적이고 원형적인 거대한 상징적 존재로서 계속 부풀어만 갔다.
실비아 플라스의 신화화를 그 무엇보다 열렬하게 부추긴 것은, 당시, 즉 1960년대 초반 꿈틀거리며 태동하던 본격 페미니즘의 시류였다. 이 강력한 시대적 조류를 타고 실비아 플라스의 삶과 작품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당장 남성의 세계에 희생된 여성 시인의 전형, 페미니즘의 기치를 든 피 흘리는 여신으로 등극했다. 여성의 야망과 성적인 생명력을 용서하지 않은 남성의 세계, 여성적 감성을 난도질한 남성적 이성, 나아가 남편 테드 휴즈의 외도로 상징되는 폭압적 남성성 그 자체에 희생된 신화적인 순교자로 추앙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계관시인까지 지냈던 20세기의 대문호(大文豪) 테드 휴즈였지만, 추상적이고 원형적인 ‘여성’ 그 자체를 대변하게 된 ‘실비아 플라스’의 살인자라는 오명만큼은 평생 낙인처럼 달고 다녀야 했고, 강연이나 시낭독회마다 시위대를 무슨 팬클럽처럼 몰고 다녀야 했다. 실비아 플라스의 무덤 묘비명에 새겨진 남편의 성(姓)인 ‘휴즈(Hughes)’라는 글자들은 새로 새기고 또 새겨도 분노한 실비아의 추종자들에 의해 지워지고 또 지워졌다. 실비아 플라스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폭풍처럼 흥성한 페미니즘의 조류를 예고하고 체현하며, 자기도 모르게 여성해방운동의 신화적 순교자라는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신화 속에 외면당한 그녀의 진실…
그러나 실비아 플라스를 뒤덮은 이 신화들은 매혹적이고 강렬한 만큼이나, 세상의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일방적이고 왜곡되고 폭압적이며, 또한 허구적이었을지 모른다. 총체적이고 삼차원적인 진실 그 자체보다는 그 진실을 읽거나 읽고 싶어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시각들에 대해 더 많은 걸 알려준다는 의미에서 진정 ‘신화’다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소용돌이 같은 죽음과 순교의 신화화 과정에서 상실된 것은, 바로 어머니였고 아내였고 또 투쟁하는 생활인이었던 자연인 실비아 플라스의 피와 살이 덧붙여진 개별성과 인간성이기 때문에. 신화 속에 부재하는 것은 바로 실비아 플라스 자신의 육성이요, 삶이요, 자아이기 때문에.
신화를 극복하는 육성, 공감의 접점을 찾아…
이러한 맥락에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아주 특별한 기록이 될 수밖에 없다. 천재시인들의 사생활에 숨어 있는 비밀스런 멜로드라마에 매혹되는 대중에게도, 가부장제에 희생된 여성 시인의 흔적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도, 플라스의 시학을 연구하는 비평가들에게도, 이 사적이고 내밀한 한 여성의 사적 기록은 저항할 수 없는 매혹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1986년 플라스 작품의 판권을 지닌 테드 휴즈가 프랜시스 매컬로우와 공동 편집해 ‘일기’라는 사적 기록을 책으로 출판하게 된 일은, 실비아 플라스의 경우 대중과 학계 모두에게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은 단순한 대중적 관음주의나 가십 취향을 넘어서 플라스의 작품 성향을 비평적으로 이해하는 해석 행위에서도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통스러운 한 ‘사람’의 기록…
이 일기들을 읽어나가는 건 가끔씩 정말로 고통스럽다. 그녀는 냉혹할 정도로 정직했고, 그 적나라한 솔직함과 무서운 신랄함 때문에 이 일기들에서 드러나는 실비아 플라스는 결코 쉽게 정을 붙일 만한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독자들은 이 일기에 드러나는 플라스의 치사하고 범속한 욕망들에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모순 덩어리에다 끔찍스러운 이기주의자. 끝내 소통과 공감에 실패하고 악에 받친 외로운 모래알. 심지어 폭력적으로까지 드러나는 자기혐오와 타자에 대한 공격성. 하지만 결국 그러한 치부는 실비아만의 것이 아니요, 우리 모두가 직시할 용기가 없었던 치부에 잇닿아 있다. 그러니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바로 그 직시의 고통일지 모른다.
결국 독자들은 책장을 덮으며 페미니즘의 순교자를 만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거대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을 만나게 되는 게 아니라,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눈부신 순간들도 있었지만, 때로는 추하고 때로는 불쌍하고 때로는 표독스럽던, 그러면서도 끝없이 ‘도와달라’고 손을 뻗쳤던 한 ‘사람’의 너무나 사람다운 인생에 연민과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이 일기들을 읽으며 결국 우리네 삶의 조건들을 성찰하게 되고, 그로써 그녀가 맞닥뜨렸던 문제, 그녀의 고민에 대한 성찰이 보편적인 인간적(여성적) 경험의 진실과 맞닿는 순간, 어쩌면 그녀를 둘러싼 평면적 신화들, 건강치 못한 관음주의를 극복할 길이 열리는지 모른다.
되살아나는 신화, 영화로 만들어져 대중의 앞에 다시 서다…
최근 다시 실비아 플라스의 신화가 재삼 첨예한 화두로 대두된 것은 바로 대중의 촉각에 민감한 영화계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테드 휴즈가 세상을 떠나고 나자, 두 사람의 스토리에 눈독을 들여온 할리우드의 영화사들이 앞다투어 영화화 계획을 발표하고 나섰다. 휴즈와 플라스는 생전에 할리우드의 접근을 극도로 꺼렸다. 하지만 결국 2003년, 영국의 BBC는 미국 자본과 손을 잡고 미국의 스타 기네스 펠트로를 캐스팅해 두 사람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 미디어 리뷰 - 1
“대중가요의 사랑타령은 모두… 욕정일 뿐이야”
조선일보 Books 김혜순 (시인·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 2004-03-20 |
작년 11월, 나는 노스햄튼의 스미스 대학에서 포에트리 센터가 주관하는 낭독회를 열었다. 그곳에서 만난 그 대학의 교수들은 모두 나에게 닐슨 도서관에 가보자고 제의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실비아 플라스의 기념관이며, 그곳엔 그녀의 일기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물론 이번에 출간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중 절반 이상이 그녀의 스미스 대학의 학생 시절과 강사 시절을 다루고 있다.) 그들 중에 특히 여자 교수들은 실비아 플라스가 그 학교 출신이라는 것, 재학 기간 중 400편의 시를 썼다는 점 등을 기꺼워 하는 눈치였고, 그 대학에선 해마다 수많은 실비아 플라스 강좌와 그녀와 관련된 행사가 열리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얘기 끝에 시인이 일기를 남기고 죽는 것이 좋은가, 아닌가에 대해서 농담 섞인 토론을 했다.
나는 자살한 예술가들의 신화를 믿지 않는다. 자살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살한 예술가가 남긴 깨끗하고 넓은 백지 위에다 자꾸만 무언가를 쓰려고 한다. 그 예술가의 삶이 정지되었다고 하는데도 한참이나 남아 있는 백지가 부담스러워서일까. 아니면 여전히 살아가느라 지리멸렬함을 견디고 있는 자신의 백지가 한심스러워서일까. 어쨌든 사람들은 그 예술가가 남긴 백지 위에다 무언가를 끄적거려야만 자신의 생의 알리바이가 성립된다고 믿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심지어는 살아서 자신의 신화를 완성하려고 덤비는 예술가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요절한 예술가의 삶은 나날이 뚱뚱해지고, 그의 순진하고 단순했던 생의 시간들은 신화라는 덧칠로 괴팍해지고, 주인공도 없는데 나날이 길어지기까지 한다.
실비아 플라스도 그런 사후 대접을 받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서른 살에 어린 두 아이 앞에 먹을 것을 두고 가스 오븐에 머리를 처박아 자살한 여자의 짧은 생에 관해 무수한 글들이 쓰여졌다. 그녀의 삶은 난도질되었고, 부풀려졌으며, 소비되었다. 자살 사건은 수십 명의 정신분석의들에 의해 분석되면서, 끝없이 우리 앞에 반복 상연되었다.(심지어 BBC는 영화로 만들 거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남성 세계에 의해 희생된 여성 시인의 전형, 혹은 갖가지 신화의 베일을 둘러쓴 여신이 되었다. 심지어 남편이었던 테드 휴즈는 아이들이 읽을까봐 두려운 나머지 자신과의 적나라한 관계가 드러나는 마지막 나날의 일기 한 권은 폐기한 채(그는 ‘그 당시 나는 망각이 생존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썼다.) 그녀의 일기를 출간했으며, 그녀가 죽은 후 35년이 지나서야 그녀를 기리는 88편의 시(‘생일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고백적 언술 방법과 여성으로서만이 발화할 수 있는 시적인 언어들, 그리고 그 언어들의 구축 원리를 스스로 체득한 자의 내면 세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어린 처녀에서 성숙한 성인으로 커가는 한 여성의 평범하나 입체적인 삶을 치사할 정도로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모든 생의 경험들을 이 일기 쓰기를 통해 시의 근원에 다가가는 몸짓으로 탈바꿈시킨다. 마치 그녀는 시를 위해 헌신하는 하녀, 창녀처럼 보이기까지 한다.(물론 덤으로 구역질 나도록 처절한 세속적 욕망과 망설임들을 읽을 수 있다.)
“신경체계의 작용이란 얼마나 복잡하고도 오묘한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는 전화기의 전자음은 자궁벽을 따라 짜릿한 기대감을 전송한다. 전화선 너머 거칠고, 건방지고, 허물없는 그의 목소리에 창자가 꽉 죄어온다. 대중 가요의 ‘사랑’ 타령을 모두 ‘욕정’이라는 단어로 바꾼다면 아마 훨씬 더 진실에 가까워질 텐데.”(1959년 대학 신입생 시절의 일기)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의 한 대목을 읽을 때는 거대한 스미스 대학 강의실 한가운데서 온몸에 전율이 좌르륵 흐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자살, 1953년 여름, 나는 그녀의 자살을 재현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1957년의 일기)
“글쓰기가 나의 건강이다. 차가운 자의식에서 벗어나 만사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면, 내게 어떤 의미인가, 내가 뭘 얻을 수 있는가를 따지지 않는다면.”(1959년의 일기)
이 일기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남성들이 써내려간 히스토리에 자신의 몸을 처단하는 히스테리로 반항한 한 여성시인의 시의 가면들이 오히려 진정성이었음을, 지독히 정상적이었음을 깨닫는 진한 아픔이 밀려온다. 그리고 죽어서도 남들에 의해 쓰여지고 있는 온갖 신화의 덧칠을 정직한 일기와 죽음의 형식으로 완성한 시들로 떨쳐내려는 여성시인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 미디어 리뷰 - 2
짧게 살다간 천재시인, 그 영혼의 고백
한국일보 책과세상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 2004-03-20 |
“나는 두렵다. 옹골차지 못하고, 속이 텅 비었다. 내 눈동자 뒤에는 감각 없이 마비된 텅빈 동굴이 느껴진다. 지옥 구덩이가 입을 벌리고 실체를 흉내낼 뿐인 무(無)가 느껴진다. 나는 생각한 적이 없다. 글을 쓴 적도, 시련을 겪은 적도 없다. 자살하고 싶다. 무거운 책임을 훌훌 벗고, 비굴하게 엄마의 자궁 속으로 도로 기어 들어가고 싶다.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1963년 2월 11일, 150년 만에 찾아왔다는 런던의 혹한 속에서 실비아 플라스는 옆방에 세 살 과 두 살짜리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우유를 챙겨놓고 수면제를 먹은 다음 가스오븐에 머리를 박고 가스를 켰다. 당시 그녀의 나이 서른 살, 이로서 20세기 미국문학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천재 여류 시인의 삶은 참혹한 비극으로 끝이 났다.
7년 전 아름답고 재기발랄한 미국의 시인 지망생과 당대의 대표적인 영국시인 테드 휴즈와의 결혼은 영문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맨스가 되었지만, 플라스는 결국 남편의 외도로 인한 별거 후, 생활고와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플라스의 죽음은 그러나 그녀가 일반 독자나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 시작한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는 당시 시작된 페미니즘과 맞물려, 플라스는 남성들의 오만과 횡포로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가치를 차단당한 여성의 고통을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그녀의 대표시집 ‘에어리얼’이나 자전적 소설 ‘종 모양의 병’에 관한 문학적 분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가히 당대의 신화적 인물로 부상한 그녀의 생애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지대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1986년 플라스 작품의 판권을 갖고 있는 남편 테드 휴즈와 프랜시스 매컬로우가 공동편집해 이 책을 출판했을 때 독자와 학계는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불리울 정도로 머리가 좋았으며 감수성이 예민했던 플라스는 열한 살 때부터 일기를 썼다.
그러나 이 책은 그녀가 스미스대학에 입학하는 1950년부터 장학금으로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던 중 테드 휴즈와의 결혼,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스미스대학 영문학 강사로 재직하다가 영국으로 돌아가서 자살하기 몇 달 전까지의 삶을 기록하고 있고, 이는 그녀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에 해답을 제공한다.
한 비평가가 ‘자신의 운명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한 인간의 끊임없는 탐구’라고 평했던 것처럼, 이 일기는 플라스의 천재성이 어떻게 외부의 장애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는가에 대한 연대기이다.
자기파괴적일 정도로 극심한 자기 표출에 관한 열정, 시인으로서 사회적 성공을 하고 싶은 야망, 이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분노와 좌절 등이 무서울 정도로 솔직하고 신랄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것은,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덮으며 가슴에 남는 것은 한 천재시인의 거대한 욕망이나 어느 페미니스트의 위대한 순교라기보다는 혼돈 속에서도 작은 드라마 같은 하루하루의 삶의 기쁨과 절망에 온몸을 맡기고 필사적으로 자신을 지킨 한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이다
||| 미디어 리뷰 - 3
'치사한 욕망'과 '불멸의 문학' 사이
동아일보 책의 향기 권기태 기자 | 2004-03-20 |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는 명문 스미스여대 수석 장학생으로 맞은 꽃다운 스무 살 때부터 사실상의 이혼녀로 자살한 서른한 살 무렵까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집안까지 얼어붙게 만들 것 같은 한파가 찾아온 1963년 2월. 그는 옆방에서 잠든 두 아이를 위해 빵과 우유를 차려놓고 문틈을 밀봉한 채, 가스 오븐에 머리를 들이밀고 불을 켰다. 자살 이유는 훗날 영국 계관시인으로 ‘등극’했던 남편 테드 휴즈와 넉달 전 별거에 들어간 뒤 생긴 우울증과 극심한 가난 때문이었다.
플라스의 묘비명에는 ‘휴즈’라는 성(姓)이 새겨졌지만 분노한 플라스의 숭배자들에 의해 몇 번이고 지워지고, 새로 새겨지기를 반복했다. 바람을 피운 데다 가난 속에 나앉은 플라스의 처지에 냉담했다는 점 때문에 휴즈는 평생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야 했다. 더욱이 ‘바람의 상대자’였던 두 번째 부인마저 딸과 함께 동반 자살함으로써 그는 페미니스트들의 영원한 표적이 됐다.
휴즈는 ‘연쇄 참화의 원인 제공자’ 혹은 ‘오해와 불운의 당사자’로서 자신을 위해 한마디의 변명도 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오랫동안 보관해 왔던 플라스의 일기를 1986년 돌연히 책으로 펴냈다. 바로 이번에 번역된 책이 그것이다.
이 일기는 플라스가 1950년 대학에 입학한 뒤부터 숨지기 전까지의 삶을 기록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에게 비범한 문학적 기량이 있어 일기를 썼다면 아마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질투와 허영 같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글이다. 삶에 대한 투지만큼 패배에 대한 불안과 낙담도 큰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비범한 문학성으로 불멸에 가 닿고자 하지만 범속하고 치사한 욕망 앞에 안달하기도 한다.
이 책에 따르면 플라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유학 중이던 56년 한 문예지의 창간 파티에서 휴즈를 만나 첫눈에 반했다. 휴즈가 애무를 하면서 헤어밴드를 낚아채자 그녀는 휴즈의 뺨을 물어뜯을 만큼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플라스는 휴즈와 결혼한 후 아이가 잠든 오전 4시에 일어나 시와 소설을 썼다. 일기 곳곳에는 안이해지려는 자신에 대한 질책과 문학사에 있어 불멸의 존재가 되려는 야망이 가득 차 있다. 그녀는 휴즈의 문학적 우월성을 인정하고 기꺼이 그의 에이전트가 되어 도와주지만, 어느 결엔가 그를 시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결국 플라스는 결혼이 파국을 맞은 후에야 절창(絶唱)들을 쏟아내는데 한 달에 무려 30편 이상을 썼다. 영미문학사의 빛나는 정점 하나를 기록한 유고시집 ‘에어리얼’은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 그녀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제 안에는 굉장한 자질이 있어요. 저는 제 생애 최고의 시들을 쓰고 있어요. 이 시들로 저는 유명해질 거예요….”
||| 미디어 리뷰 - 4
신화를 벗겨 낸 천재시인의 삶
경향신문 MAGAZINE X 책 송현숙 기자 | 2004-03-20 |
1960년대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혹은 비극영화 속의 매혹적인 여주인공으로…. 끊임없이 중층의 신화로 재창조되었던 미국의 유명한 여성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63)의 일기다.
실비아 플라스는 영국여왕 엘리자베스2세의 계관시인까지 지냈던 테드 휴즈(1930~98)와 결혼했지만 남편의 외도로 이혼, 우울증과 생활고 등으로 시달리다 30대 초반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한 인물.
충격적인 죽음 이후 실비아 플라스라는 이름은 60년대 초반 태동하던 페미니즘의 시류를 타고 남성의 폭압성에 희생당한 순교자로서 신화화했다. 아름다운 금발의 미국 여성시인과 핸섬한 당대 최고 영국시인의 황금빛 로맨스 역시 멜로드라마의 극적인 요소까지 갖추면서 끊임없이 대중의 관심거리가 됐다.
이 책은 실비아가 대학입학을 앞둔 50년부터 62년까지의 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책 속에서는 신화의 옷을 벗은, 뼛속까지 인간적인 실비아 본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사춘기 소녀의 치기어린 감상에서 성적인 욕망과 질투심 등 때로는 치사할 정도로 범속한 각종 욕망들이 지나치리만큼 솔직하다. 자기애에서 비롯된 고독과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도움의 손길에 목말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와 그다지 다를 것도 없는 평범함이 그녀의 비범함만큼이나 절실하게 다가온다.
다만 이 글을 일반인의 글과 구별짓는 것은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시에 대한 강박적 헌신. 자기 시의 문제점을 스스로 평가하기도 한다. 또 작품이 안 써지는 고민을 쏟는가 하면 시쓰기를 위한 수많은 다짐이 적혀 있다.
그는 짧은 인생 내내 ‘시’라는 화두에 절대적으로 매달렸다. “저는 생애 최고의 시들을 쓰고 있어요. 이 시들로 인해 저는 유명해질 거예요”라고 예견한 것처럼 ‘천재시인’이라는 면류관을 얻었다. 그 천재시인의 일기 답게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 소설처럼 흡인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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