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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ど) Empathy

Peter Caemenzind 중에서 / Hermann Hesse

by soulfree 2006. 5. 1.

10년도 더 지난 낙서장을 뒤적이다 향수(페터 카멘친트)를 적어놓은 페이지를 발견!
내가 좋아하는 부분들을 낙서장에 잘 써놓곤 했었는데... 이게 제일 길지 싶다...^^
내가 '독일에 가고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가장 큰 직접적인 이유는 아마도 헤르만 헤세와 전혜린 때문이었을거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다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페터 카멘친트'...
다른 작품들도 그랬지만 특히나 '페터 카멘친트'가 내게 더 남다른 울림이 있었던건... 바로 '친구'때문이었지...
이 책을 읽었던 시절에... 내게 친구는... 은주는... 그때까지의 내 삶에서 절대 생략할수 없는 존재였기에...
'은주'를 뺀 내 중고등학교 시절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아니다...
난 그랬었다...
그래서 페터 카멘친트를 읽다가 자주 울컥울컥 했었지...
소설속의 페터가 경험하는 슬픔들이 내게는 다 은주로 대치되어 감정이입이 됐었으니까...
리하르트를 잃었을때 보피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었을때... 나도 함께 찔찔...
어떤밤은 너무 슬프고 답답한 맘에 잠을 못자기도 했었지 아마? 크크크...
아직도 너무 좋은 헤르만 헤세...
낙서 덕분에 참... 은주가 보고싶은 밤이다...
은주야! 너는 이런 내맘을 아느뇨????

우리가 헤어진지 2주일 후 그는 남부 독일에 있는 조그만 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익사하고 말았다.
나는 그를 영영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 그가 매장된 후에야 비로소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순간 나는 방바닥에 쓰러져 통곡하며 하느님과 인생을 저주하고 미친듯이 날뛰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재산이 우정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우정이 이제는 사라지고 만것이다.
여러가지 추억이 떠올라서 숨막히게하는 이 도시에 나는 더 이상 머물러 있을수가 없었다.
결과야 어찌됐든 내게는 마찬가지였다.
내 영혼의 핵심은 이제 병이 들고, 살아가는 모든것이 두려웠다.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 새로이 돛을 달고 성년기의 더욱 혹독한 운명을 향해서 날아갈 희망은 당분간 어려울듯 싶었다.
하느님은 나의 가장 뛰어난 점을 순수한 우정에 바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우리는 두 척의 배와 같이 서로 앞을 다투어 달렸었다.
리하르트의 배는 화려하고 경쾌할뿐 아니라 행복하며 기분좋은 것이었다.
나는 곁에서 그의 배를 지켜보면서 그의 배가 나를 아름다운 목적지에 함께 데려다 주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배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침몰하여 버렸고, 나는 혼자 방향을 잃고 갑자기 어두컴컴한 바다위에서 방황하게 된 것이다.
이 가혹한 시련을 극복하고 키를 바로잡아 새롭게 출발하여 인생의 월계관을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 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우정과, 여자의 사랑과, 그리고 내 청춘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것이 하나하나 나를 버리고 달아난 지금, 나는 왜 하느님을 믿고 보다 강한 그의 팔에 나를 맡기려고 하지 않았을까
일생동안 어린아이처럼 겁이 많고 고집이 센 나는 진정한 인생이 폭풍우처럼 밀어닥쳐 나에게 충족함을 주고, 나를 커다란 날개에 태워 행복이 무르익은 언덕으로 데려다 줄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현명한 삶은 내가 오만하고 건방진 광대놀이를 하는대로 내버려두고, 내게 별도의 폭풍우도 보내지 않은채 잠자코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가 다시 어머니를 찾을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그때 내 낡은 본질의 일부는 금발의 아이와 더불어 죽어버렸다.

...


이제 나는 내 모든 사랑을 바쳐 그와 더불어 모든 생활을 나누어왔던 곱추가 괴로워하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음을 보게되어 하루하루를 함께 괴로워하며 죽음의 끔찍함과 성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나는 아직 사랑하는 방법에서는 풋나기에 불과했으며, 동시에 죽음의 장을 배워야만 했다.
죽음은 냉혹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 탕자를 집에 맞아들이는 인자한 아버지와 같이 다정하고 자비롭게 보이기도 했다.
죽음은 자기의 정확한 시각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믿고 기다릴수 있는 현명하고 착한 형제라는것을 나는 또다시 깨달았다.
또한 고뇌와 환멸이나 우울같은 감정은 우리를 불쾌하고 가치없고 품위없게 만들기 위해서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숙케하고 정화시키기 위해 있는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


나는 어떤 장애물이나 악마가 나의 건강한 몸뚱이 속에서 나의 영혼을 가로막아 내 영혼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일까 하고 고민했다.
동시에 나라는 인간은 별나고 결함투성이어서 아무도 내 고민을 알거나 이해할수 없고, 동정을 받을수도 없을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우울이란 악마는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할 뿐 아니라 자아도취에 빠지게하여 근시안적이고 오만하게조차 만드는 것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하이네의 무미건조한 거인 '아틀라스'처럼 세계의 모든 고뇌와 수수께끼를 혼자서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줄로 착각하게 된다.
따라서 다른 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고통에 시달리지않고 자기처럼 미로를 방황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 오랜 세월 혼자 살아오는 동안에 나도 내 특수한 개성의 대부분이 나의 천성이라기보다는 카멘친트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미덕이나 악습일것이라고 여겨졌던 생각도 고스란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

그것이 나의 운명인듯, 나는 남에게 주기보다는 인생이라든가 친구로부터 받는편이었다.
리하르트, 엘리자베스, 나르디니 부인 그리고 목공과의 관계가 그러했으며, 이제는 분별있는 나이이고 충분히 자존심도 있는 내가 비참한 곱추의 제자가 되어 경탄과 감사의 마음을 품는다는 운명을 체험했다.
언젠가 내가 오래전부터 시작한 작품을 완성해서 세상에 내놓게 된다면 그 작품의 좋은점은 거의가 보피에게서 배운것일것이다.
나로서는 의의가 있고 평생 충분히 탐닉할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 시작된 것이었다.
나에게는 훌륭한 사랑의 영혼을 깊숙히 명찰할 수 있는 힘이 베풀어졌으며, 병도 고독도 가난과 학대도 마치 가볍게 흩어져 사라지는 뜬구름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우리의 짧고 아름다운 생을 못쓰게 망쳐버리는 근원이 되는 조그만 죄악들, 분노와 초조와 불신과 거짓, 우리를 추악하게 만드는 이런 불쾌하고 끈끈한 부스럼들이, 이 고통스런 인간의 경우에는 오랜 세월 끈질기고 극심한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성자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었으나 엄청나고 끔찍한 괴로움과 부자유속에서 스스럼없이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고 신의 손길에 스스로를 맡기는것을 배운 이해와 헌신으로 충만한 인간이었다.

사랑한다는것은 그런것이다.
사랑은 고통을 가져다 주는 법이다.
나는 그 이후로도 이 일로 몹시 괴로워했다.
그러나 고통을 느낀다던가 안 느낀다던가 하는것이 그리 문제되는것은 아니다.
굳세게 같이 살아갈 사람이 있고 우리의 모든 생명을 연결해주는 긴밀하고 생생한 결속을 느낄수만 있다면 말이다.



염혜규
그 친구분은 지금은 어디 계신데요?ㅡ.ㅡ
(2006/05/01 08:58)
카오
한명은 캐나다에 한명은... 어디에 있을까??? 한명은 응암동에~ ^^;;(썰렁~) 우리는 은주+은주+진주 삼총사였쥐~^^ 캐나다에 있는 넘이 저 위에 섬쥔장으로 있는 정은주.. 내 칭구들은 당최 인터넷이랑 안친해서 말이쥐~ ㅡㅜ
(2006/05/06 01:55)
2931
아 그럼 헤르만헤세친구가 줜장님?아님 다른 은주님--a /인터넷이랑 안친한건.. 흐.. 언니가 아무래도 세대가 위다보니까 ^^ 농담농담 ㅎㅎ 건 아니고 혹시 다들 예능계에종사?
(2006/05/06 03:09)
카오
비밀! 은주들과 내 사이... 알면 다쳐~~^^ | 내 중고등학교 친구중 예체능계 종사자(?)는 창원에서 미술학원하는 넘 하나여~ 유치원선생,약사,간호사,프로그래머,사무직 등등... 여러가지~ ㅡ..ㅡ 동종업계 친구들은 대학과 일터에서 사귄 넘들...^^
(2006/05/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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