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님 1주기 기념 (최종규 (함께살기)글 | |
글쓴이 : 兒童文學評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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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난 8월 25일은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첫돌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게, 기리고 즐길 일이 많고 바쁘기도 해서 참 많은 일이 잊혀지지요?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첫돌이 되었으나 그 날을 떠올려 주는 이도 많지 않습니다. 젊었던(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채광석씨가 죽은 7월 12일에도 어느 누구도 그 이를 떠올리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젊었던 판화가 오윤씨가 죽은 7월 5일에도 어느 누구 그 이를 떠올리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 지만 어쩌습니까. 죽은 이는 죽은 이이고 산 이는 산 이일 테니까요. 다만 죽은 이가 살아 있는 동안 품었던 고운 뜻과 이루려고 애쓴 힘차고 굳센 마음을 잘 이어받아서, 바쁘디 바쁜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꾼다면 그것으로도 좋지 싶어요. … 셋째, 어린이들은 우리 겨레의 문화 전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 그리는 것도, 문학까지도 서양 것을 따르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어린이들을 우리 겨레의 어린이로 키워가지 못하는 것,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우리 겨레이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겨레의 어린이로 키워가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문학이다. 그 런데 우리 어린이들이 서양 어린이와 다름없이 자라나고 있다면 지금까지 어린이문학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우리 어린이문학은 도무지 제구실을 못했거나 오히려 서양 어린이가 되도록 하는 반민족의 문학이 되어 왔다고 할 밖에 없다….<227쪽> 한 겨레는 한겨레다워야 합니다. 이라크 사람은 이라크 사람다워야 합니다. 수단 사람은 수단 사람다워야 합니다. 연변 자치구에 사는 한겨레는 연변자치구에 사는 한겨레다워야 합니다. 파푸뉴기니아 사람은 파푸뉴기니아 사람다워야 하고, 볼리비아 사람은 볼리비아 사람다워야 합니다. 이들이 똑같이 서양이나 미국 문화에 젖어들고, 미국말만을 가장 중요하게 배우고 써야 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이오덕 선생님은 겨레사랑과 어린이 사랑을 꾸준하게 말합니다. 이런 사랑을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어떤 '주의'냐가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는 데 '인본주의'라고 갖다 붙일 것 없고,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키우는데 문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일을 '문학주의'라고 갖다 붙일 일이 없어요. 한국사람은, 그 가운데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들은 한국 땅에서 나는 먹을 거리를 즐기고, 한국 땅에서 한국 바람을 쐬고 한국 물을 마시면서 가슴을 넓게 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대목은 이오덕 선생님이 펼친 모든 일 - 문학이며, 교육이며, 글쓰기며, 우리 말 운동이며 - 밑바닥에 차분하게 흐르는 고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글이 아닌 말을 해야 한다 …글이란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먹고 일하고 놀고 공부하는 것, 곧 삶을 쓰는 것입니다. 삶을 떠난 글은 아무 뜻도 없고, 속임수입니다…<22쪽> 우 리가 쓰는 글이라면 마땅히 입으로 하는 말을 담아내는 글이어야 좋습니다. 글에서만 쓰는 말(글말), 외국 말법과 말투에 병들고 찌들어 우리 삶을 더럽히는 나쁜 말, 일제강점기 때부터 써서 아직까지도 벗어내지 못한 일본말, 오랜 사대주의 때가 묻어서 너무도 많이 쓰는 한자말, 서양 것이면 뭔가 번듯하고 품위가 있고 멋이 있다고 느끼면서 엉뚱하게 엉터리로 쓰는 미국말 들은 우리가 써서는 안 될 말입니다. 어른들이 이런 말을 자꾸 쓰고 퍼뜨리고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니 참 딱해요.
…어른들이 우리 말을 잘못 쓰니까 아이들도 따라서 잘못 쓴다…<184쪽> '신문기사'를 '기자만 쓰란 법'이 없지요? 그런데 온 나라 신문과 방송은 기자와 피디가 주무릅니다. 그렇다고 그 기자들이
책임 있고 성실하고 부지런히 모든 기사를 정성껏 취재해서 쓴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자기들끼리 쓰기' 때문에 그래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말 을 올바르게(정직) 쓰면 삶도 올바를 수밖에 없다는 게 이오덕 선생님 생각입니다. 그냥 말만 곱고 예쁘게 한다고 해서 사람도 곱고 예뻐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소리이냐? 옳게 본 것은 옳게 본 대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있다고 말하며,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하며 살아야, 자연스럽게 자기 삶도 올바르게 가꿀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수박 겉핥기처럼 '고운 말 예쁜 말'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돈봉투를 '촌지'라 하여 주고받는 학부모와 교사들, 그리고 그밖에 관공리들의 심리와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촌지'란 한자말은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정직한 말(돈봉투)을 하기가 두려워서 그것을 적당히 덮어 가지고 보기 좋도록 화장을 해 놓은 말(한자말이 이런 노릇도 잘 한다)이지만, '떡값'은 돈인데도 몇 푼 안 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쓰는 말이라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259쪽> 정치인이 주고받는 돈은 '떡값'이 아닙니다. '엄청나게 큰 검은 돈'입니다. 그런데 보통 언론은 그저 '떡값'이라고 합니다. '돈봉투'도 그래요.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사람마다 죄값이라 붙인 이름을 보면 알듯 말듯한 말로 덮어 씌웁니다. 이런 말이 다 무엇이냐 하면 삶을 어지럽히고 올바름을 숨기며 그릇된 길로 가는 일이에요. 학자들이 말을 어렵게 해서 자기 학문 연구를 게을리하듯, 부정부패를 일삼는 사람들은 말로 방패를 만듭니다.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겨레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일, 이 땅 어린이들이 어린이다움과 사람다움을 지니고 가꾸며 살아갈 수 있는 일로, "우리 말과 글을 도로 찾아 가지고 바르게 살려서 써야 한다"고 말하셔요. … 우리가 살아나려면 우리 말을 도로 찾아 가지지 않고는 절대로 안 된다. 문학이고 예술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도 경제도 학문도 교육도 종교도 철학도, 무슨무슨 운동도 우리 말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우리 것이 아니고 가짜다.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겨레말을 이제라도 우리는 땀투성이 피투성이가 되어 도로 찾아내어야 한다. 정말 죽기를 마음먹고 우리 혼이 담긴 말을, 파묻히고 도둑맞고 우리 스스로 모질게 학대하고 있는 조국의 말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살려야 한다. 그리고 배달겨레의 자손들에게 우리 말을 이어주어야 한다…<238쪽> <우리 말 살려쓰기, 아리랑나라(2004)>란 책은 이런 뜻에서 세상에 나왔습니다. 실제 사례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들려주기도 하면서, 왜 이렇게 '우리 말 이야기'를 오래도록 깊이 있게 살피는지 중요한 생각(사상과 철학)을 펼칩니다. 책 뒤에는 '낱말 모음'이라고 해서, 이오덕 선생님이 손수 고쳐서 쓰신 말을 모았습니다. 지난날(1980년대 중반까지)에는 선생님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잘못 쓴 말을, 1980년대 끝무렵부터 고치셨는데, 그렇게 고쳐 쓰신 말 가운데 이번 책에 실린 글에 나온 말을 뽑아서 모았습니다. '아리랑나라'라는 출판사는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세운 출판사입니다. 우리네 책마을이 워낙 병들고 더러워져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조용하면서도 깨끗하게 책마을 얼을 지켜나갈 일을 스스로 하셔야겠다며 연 곳이에요. ' 아리랑나라'라는 이름은 "한겨레는 아리랑겨레이다"라 하시면서, 세계 어디를 가도 '아리랑'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고 춤이 나오지만 '애국가'를 들으면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기만 한다며, 어찌 '애국가'가 우리 나라 노래이냐고, '아리랑'이야말로 우리 나라, 우리 겨레의 노래란 뜻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생각해 보면 전국 곳곳에서 '아리랑' 민요를 온갖 모습으로 부릅니다. 이런 '아리랑나라'에서 앞으로 <우리 말 살려쓰기>를 네 권쯤 낼 생각이며, <우리 말 살려쓰기> 네 권을 마친 뒤에는 <이오덕 바로쓰기 사전>을 묶어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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