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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보고 웅얼웅얼

[시사매거진 2580] 작전명 여우사냥

by soulfree 2006. 8. 14.

기사의 섬세한 자료오류 등을 떠나서...
광복절을 앞에두고 명성황후 시해 110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또 나름 울컥...
저런식의 시해장면 묘사가 있는 문서가 있다는 사실에 울컥...
그 칼이 아직도 시퍼렇게 모 신사에 자랑스럽게(?) 잘 보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또 울컥...
참 모진 민족이로세...
아무리 식민통치를 했다하나... 겨우 반백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속속들이 이 나라를 대체 얼마나 들쑤셔 놓은건지...
이걸보고 울컥해서 채널을 돌리니 일본우익단체의 청년들이 보인다...
오호라 통재라...
나눔의 집에 가서도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치않는다...
나눔의 집에서 학술연구를 하는 일본청년... 거기에 방문한 일본우익청년...
나눔의 집 청년의 이야기가 꽤 인상적...
우익청년의 말도 꽤 인상적... 저런저런...
그래도... 일본에도 늙은 참의원처럼 나눔의집 청년처럼 저런식으로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채널을 또 돌리니 재일교포 양방언씨의 이야기...
벌써 재일 4세대의 이야기들까지...
문득... 교포 3세대에 해당하는 혜영이 동생이 생각난다...
노보짱이라고 했던가? ㅡㅡa
혜영이와 노보짱은... 어떻게들 살았을까?


이것이 바로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의 칼이다. 이 칼의 칼집에는

'一瞬電光刺老狐(일순전광자노호;단숨에 전광과 같이 늙은 여우를 단방에 베었다)'

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퍼옴 시사매거진 2580 시청자 게시판

http://www.imbc.com/broad/tv/culture/sisa2580/bbs/index,1,0,0.html

['이시즈카 에이조 보고서' 문서의 실체] 중--김종욱 2006/08/14 27


"왕비는 일본인에 의해 옥호루(玉壺樓)에서 살해되었다. 그러나 일본인은 왕비의 얼굴을 몰랐으므로 확실히 왕비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궁녀와 왕태자 이척(李 )을 연행하여 확인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살해한 후 사사 마사유키는 왕비의 몸에 달려있는 향(香)주머니와 기타 귀중한 물품을 빼앗아 가고 다른 난입자(亂入者)도 또한 왕비 방에서 각종 물품을 빼앗아 갔다.

(<王妃殺害> 諸第 57號)고 우치다는 보고하고 있다.

더구나 왕비를 끌어내어 2, 3 군데 인상(刃傷)을 입히고 또한 발가벗겨 국부검사(局部檢査= 可笑又可怒-原注)를 했다고 까지 전해지고 있다.

(<日本의 韓國倂合> 야마베 켄타로오(山邊健太郞) 太平出版社 1966년. pp. 51~52)


그때 미우라는 입궐하여 국왕을 알현하고 있었다. 범인들은 사후 처리의 지시를 긴급히 요구했으므로 미우라는 알현 도중에 자리를 떠나 왕비의 사체(死體)를 확인하고 하기하라에게 급히 치우라고 명령하고 다시 알현실로 되돌아가고 있다.

(<太山巖> 第4卷. p. 432)

그래서 하기하라는 왕비를 옥호루 동쪽 정원에 장작을 쌓아 석유를 끼얹어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그것은 죄악의 증적(證迹)을 인멸(湮滅)하기 위해서(<王妃殺害> 公信 第 98號)였다. "


"범행 현장에는 조선인은 물론, 맥이 다이와 러시아 기사인 사바틴이 함께 있었으므로, 일본인의 범행을 자국(自國)의 영사(領事)들에게 속히 보고했다. 이들의 보고로 진상은 곧 퍼져갔으며 미우라의 처리방책은 파탄을 본다.

그래서 사건 당일 오후 미우라는 약간 어조를 바꾸어 사이온지에게 보고하였다.

사건은 표면 상 조선인의 일이나 이면(裏面)에서 다소의 일본인이 가담하였기 때문에 실은 본관(本官)이 묵시(默視)했던 것이며, 러시아와 조선 왕비의 결탁이 일본의 정책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대항하는 대원군의 결기(決起)에 일부 일본인이 가담한 것이다.

단 우리 군대는 진정코 진무(鎭撫)를 위해 출병했을 따름이며 결코 그들을 방조(傍助)하지 않았다. 또 일본 민간인도 역시 난폭한 짓을 한 사실은 없지만 장래 이 때문에 외교상의 곤란을 야기(惹起)할 염려가 있다면, 본관은 처벌을 받아도 유감이 없다고 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미우라 책의 원형의 첫째, 둘째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지는 않지만 파탄(破綻)을 보이기 시작한 곳은 일부의 일본 민간인이 대원군의 요청으로 호위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게재되어 있다.
사건 직후 구미 각국 공사들이 고종을 알현하고 그 길로 미우라를 방문하여 일문(一問)한다. 미우라는 앞서 말한 원형을 고집하여 궤변을 늘어놓았으나, 러시아 공사 웨버 등은 입궐하는 길에, 칼을 빼어 들고 왕궁에서 물러 나오는 일본 군민의 다수와 만났다는 것, 게다가 맥이 다이와 사바틴 등이 왕궁에서 일일이 목격한 바가 있다. 이는 어찌 된 일이냐? 하고 추궁하였다. 이에 대해 미우라는 대원군을 호위한 것은 일본군이 아니다. 일본 군대는 질서유지를 위해 출동한 것이며 부인을 학살한 사실은 보고에 없으며 인부 등의 약간의 일본 민간인은 혼잡을 틈타 섞여 든 자일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열강 공사들은 일본 군민의 참가는 엄연한 사실이며 이 사변은 자못 중대한 일이니 이대로 간과(看過)할 수 없다고 항의하여 미우라의 궤변은 통용되지 않았다.

(<日本外交文書> 28-1 pp. 493-494)

맥이 다이 등이 목격한 것이 일본에게는 치명상이 되었다. 그것을 내부고문(內部顧問) 이시즈카 에이조오(石塚英藏, 1866-1942)는 공교롭게 어떤 미국인이 현장을 목격한 것을 보통 일반 조선인의 증언처럼 말살해버릴 수는 없다....살인의 일이므로 다소 빈 구석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바이나, 정도가 매우 심하다고 정부에 보고했다.

 (<스에마츠 법제국장관(末松法制局長官) 완(宛) 이시즈카 에이조오(石塚英藏) 서간(書簡) > 국립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國立國會圖書館 憲政資料室) 소장. <헌정사편찬회수집문서(憲政史編纂會收集文書)> 所收)



>>>퍼옴 시사매거진 2580 시청자 게시판


http://www.imbc.com/broad/tv/culture/sisa2580/bbs/index,1,0,0.html

[시사 다큐 '2580'의 내용이 점점 촛점을 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 김종욱 2006/08/14 30]


 오늘 8월 13일 프로 '명성황후' 프로를 보고 실망이 매우 컸습니다.

 단지 15분 동안 비쳐준 내용의 주된 설명, 촛점이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하는 모호감에서 시청을 한 연후에 감감하게 생각을 잠시동안 해보았습니다.

 취재하기 전의 사전 정보 제공- 과거에 이미 알려졌던 캐캐묵은 소재의 것은 아니었던지 조사를 전혀 하지 않고 서둘러 제작하여 방영한 그 속셈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지금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는 명성황후 국장 의궤도감이 소중하게 소장되어 있을 뿐더러 한영우 교수가 그에 대한 책자까지 출간한 사실도 있었습니다.

 워낙 양적으로 의궤의 그림들이 방대하게 많음으로써 약간 추려 수록을 했지만 그 정도로 보아도 명성황후 국장 상황을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오늘 방송된 그림을 통해 의궤는 가령 한 컷도 보여주질 않으면서 오직 오대산 사고에 소장되어 있던 의궤를 일제 때 피탈되어 국내에선 볼 수 없다는 엉뚱한 해설에 그만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역시 동경제국대학에 보관된 실록 50여 권이 무사 반환된 사실과 같이 이 궤도는 엄연히 국내에선 전량이 규장각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을 뿐더러 앞으로 일본에 수탈된 동본의 의궤를 다시 찾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하겠다고 방송엔 소개의 맨트가 있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전혀 명성황후 국장 의궤도감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고 유일하게 일본에만 소장되어 있는 것 처럼 그릇 오도된 망령의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오늘 이 프로를 보신 시청자들께서는 귀 방송국의 그릇된 실수로 해서 그 사실을 그대로 믿어 일본에민 남아있는 명성황후 국장 의궤도감을 반드시 되찾아와야 한다면서 설래발을 칠 것을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 없군요.

 왜 사전에 충분한 조사를 못하고 거듭 실수만 자초하십니까?

 요 근래에 부쩍 명성황후의 어진이랄 수 있는 진영 근처에도 접근 못할 괴상망칙한 촌부인네 사진까지 등장시켜 명성황후 어진이라며 헤프닝을 벌이는 연합통신의 망발은 한 바탕 웃어넘기기에도 기가 찰 노릇이랄 수 있겠습니다.

 매사 신중을 기하여 귀 방송의 다큐를 충실하고 왜곡되지 않게 만들어주실 것을 심심하게 간청을 드리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