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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좀보고 웅얼웅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불새

by soulfree 2010. 5. 2.


1.
때때로 처음은 그것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내게 '클래식 음악' 혹은 '오케스트라'는 [불새]였다.

국민학교 3학년때던가?
그때 다니던 피아노학원에서 단체관람으로 갔던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는
내겐 가끔 꿈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감 '0'의 경험이었달까.

떨어지면 죽을것만 같았던 무시무시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현실감없는 계단높이하며...^^;;;;
(애들이 떠들까봐 선생님께서 2층에다 자리를 잡으셨었거덩~ ㅡ.ㅡ;;;)
음악책에서 간단한 펜화로만 봤던 콘트라베이스며 하프,
청명하게 둥둥거리던 팀파니 소리,
무수한 현악기의 활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춤을추듯 연주하는 광경...
그때 들었던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알을 깨고나와 처음 본 존재에게 엄마맹세를 하는 오리처럼
그 날의 그 모든것이 내게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의 '클래식'이 되었었고
내 '클래식'의 아이콘은 단연 [불새]였다.

2.
에반 라이사첵이 이번 시즌에 더 좋아졌던 이유는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던 그가 올림픽 시즌에 작년시즌 김연아의 롱 프로그램 음악이었던[세헤라자데]와 [불새]를 들고 나왔었기 때문이었다. ^^
게다가 금메달을 거머쥐고 한 인터뷰에서 김연아에게 용기백배의 응원까지 보내줬으니...^^
안그래도 까무잡잡한 라이사첵이 베라 왕이 해줬다는 까만 의상을 입고 [불새 fire bird]를 연기하게 되자 일부 팬들은 [탄새 burn bird]라고 부르기도 했더군. ^^
오늘 연주에서도 중간중간 라이사첵이 편집해서 썼던 부분이 나오면
라이사첵이 빙판위에서 연기하던 동작들이 떠오르곤해서 피식피식 웃었다는...^^;;;;;

3.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불새
아름답고 환상적이었어.
그래.
벨벳사운드라고 씌여있던 팜플렛속 평론가들의 표현과 소개글들
십분 공감하고도 남음이었다.

근데...
내 취향은 아닌듯한 불새였달까?... ^^;;;;;
너무나 잘 다듬어지고 세련된 불새여서 전설의 동화속에 살아 숨쉬는 불새가 아니라
베르사이유 궁 정원에 아름답게 잘 세워진 불새동상 같은 느낌이었달까...
좀 그랬어.
파괴력이랄지
기괴한 에너지랄지
좀더 기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이거나 클라이막스에선 완전 박력있고 강렬한 연주이길 바랬는데
폭발적인 부분에서도 참 정교하게 잘듬어진 유려한 연주를 하더라...
기묘한 불협화음같은 부분들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너무나 그럴듯한 앙상블을 이루며 연주해내더라.
관악, 타악, 현악, 목관악기까지 모두다 동원되어서 설핏 연주가 아니라 난장같이 느껴졌던 부분들까지
너무나너무나 아름답게 연주해내더라.
'내가 알고있던 그 불새가 맞나?' 싶을 정도여서 낯설기도 하더라.
근데... 귀신처럼 정확하게 연주를 잘 하는건 느끼겠는데... 뭐랄까... 너무 교과서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불새의 매력이 반감되었달까... ㅡ.ㅡ;;;;
타악과 관악 파트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곡은 확실히 타악기와 금관악기의 앙상블이 중요하구나 하는걸 다시 한번 느낄수 있을만큼 인상적이었다.

참 아름다운 불새였으나... 불꽃처럼 화려하게 비상하는 강렬한 불새가 아니라
새장 안에서 곱게 단장하고 칭찬받기를 기다리는 새침하고 도도한 불새였다.
동화속 펄펄 살아숨쉬며 황홀하도록 아름답게 비상하는 불새를 기대했던 나는 오늘은 살짝 김이 빠진... ㅡ.ㅡ;;;

'벨벳 사운드'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프로그램은 어제였다! 에 한표. ^^

4.
[봄의 제전]은 그래도 [불새]보다는 원시 에너지랄까 그런게 좀 느껴지는 연주였다.
하지만 그런 원초적 에너지도 서곡을 지나가자 차차 다듬어지고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들었던 [봄의 제전]중
가장 화사하고 정교하고 유려한 봄의 제전이었음에는 확실하다.
허나... 그 또한 [봄의 제전]과 어울리는 수식어인가?라고 생각해보면... 움... ㅡ.ㅡ;;;
뒤마에가 해석한 [봄의 제전]은 이런거였을까??



p.s.1
악장이 한국인인가? ㅡㅡa
한국계? ㅡㅡa
뒤마에의 소개로 악장이 나와 앵콜곡 소개를 한국어로 하는걸 듣는 기분!
오옷!!! 완전 상콤했다. ^^
특히 현악파트에 동양계가 꽤 많아보였는데... 왠지 그 분들의 국적까지 다 궁금해지더라는...^^;;;;;

p.s.2
뒤마에는 공연후 맘에 들었던 연주자를 일으켜 세운다고 하던데
처음엔 목관파트 연주자들을
그 다음엔 금관악기 파트들을
그 다음엔 타악기 파트들을 일으켜 세우셨다.
정말 그들의 연주는 기립박수를 받아 마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