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피나바우쉬의 숨을 보러간다.
안무도 안무지만... 난 정말 그녀의 '무대'가 기대되거덩...
피나 바우쉬 부퍼탈 탄츠테아터가 내한할 때마다 한국 관객들이 가장 기대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장관을 만들어내는 인상적인 무대이다.
2000년 <카네이션 (Nelken)> 때에는 LG아트센터의 무대가 수천 송이의 카네이션이 심어져 있는 꽃밭으로 변했고, 2003년 <마주르카 포고 (Masurca Fogo)> 때에는 하얀 상자 안에 거대한 바위산을 담아냈으며, 2005년 한국을 주제로 한 <러프 컷 (Rough Cut)>에서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산야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서울 동대문 쇼핑몰의 영상을 담아냈다.
이렇게 작품마다 흙과 물, 잔디와 꽃, 동물과 같이 자연과 일상에서 가져온 배경과 소품, 영상들로 획기적인 무대를 구성해 선보이는 사람은 바로 무대 디자이너 피터 팝스트이다.
1982년 작품 <카네이션>을 시작으로 피나 바우쉬의 예술적 동료로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그녀가 발표하는 거의 모든 작품의 무대 디자인을 맡아온 팝스트가 피나 바우쉬와의 작업에 대해 얘기한다.
팝스트 이전에 무대 디자인을 맡았던 이는 바우쉬의 반려자이기도 했던 무대 디자이너 롤프 보르칙(Rolf Borzik)이었다. 그러나 그는 바우쉬가 세계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할 즈음인 1980년 병으로 타계하고 말았다.
인생과 예술의 동반자를 잃은 피나 바우쉬의 충격과 슬픔은 매우 컸다.
그녀는 이를 떨쳐내기 위해 작품에 매달렸고, 몇 년 전 연출가 피터 차덱(Peter Zadek)과 함께 찾아와 무용단의 리허설을 구경했던 팝스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팝스트는 당시 프리랜서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고 무용단과의 작업 경험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바우쉬는 그가 작업한 작품들에서 묻어 나오는 드라마틱한 면모를 좋아했고, 이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 바우쉬와 팝스트의 첫 작품 <1980>이었다.
“피나 바우쉬와의 작업은 마치 깊은 물 속을 헤엄치는 것과 같습니다.“
팝스트의 표현처럼 그가 바우쉬와 함께 발표했던 모든 작품들은 복잡하고도 난해한 협동 작업의 산물이다. 그가 함께 작업했던 연극/오페라 연출가나 안무가들은 악보나 대본이 미리 완성되어 있거나 테마가 정해진 상태에서 리허설을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바우쉬는 리허설 초기에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어떤 아이디어조차도 절대로 말해주는 법이 없다.
대신 그녀는 무용수들에게 감정이나 인간관계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쏟아낸다.
그에 대한 답은 무용수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데 때로는 말로, 때로는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바우쉬는 무용수들이 보여준 반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때로는 반복해볼 것을 요청하기도 하며, 그것을 간추리고 극적으로 강화해 작품을 만들어간다.
이렇게 리허설이 진행되면서 팝스트는 디자인을 위해 스케치를 하고 모형을 제작한다.
그 중 많은 부분이 바우쉬에 의해 거부되기도 하고 또 토론를 거쳐 변경되기도 한다.
이렇게 두 달 이상 계속되는 리허설 기간을 거쳐 작품은 특정한 모양새를 갖추어나가기 시작한다.
그 즈음이 되면 팝스트는 누가 무엇을 제안했었는지도 기억하기 힘들 정도가 된다고 고백한다.
작품 <팔레르모 팔레르모 (Palermo Palermo)>의 경우 리허설 기간 동안 부퍼탈에 있는 옛 영화 극장의 벽이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던 바우쉬와 팝스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그 광경에 매료되어 버렸고 이는 곧 작품에 도입되었다.
<팔레르모…>에서 무대 전면에 쌓여져 있다가 공연 시작과 함께 큰 소리를 내며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벽돌벽은 놀라움과 강렬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수천 송이의 꽃으로 무대 전면을 덮었던 작품 <카네이션>도 역시 바우쉬와 네덜란드의 튤립밭에 대해 사적인 얘기를 나누다가 착안했던 것이라고 팝스트는 말한다.
② Palermo Palermo (팔레르모 팔레르모 : 1989) photo by Francesco Carbone
③ Der Fensterputzer (유리 청소부 : 1997) photo by 우종덕
④ Wisenland (초지 : 2000) photo by Matthias Zoelle
팝스트는 피나 바우쉬와 함께 작업하면서 ‘현실의 조건(a condition of reality)’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피나 바우쉬의 안무가 일상적인 움직임(ordinary gesture)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그녀의 작품을 위한 디자인도 굳건한 현실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 세상처럼 혼란스럽고 어수선해질 지라도 말이다. 바우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현실의 환상(illusion of reality)’이라고 팝스트는 강조한다.
그녀의 작품 속에 나오는 무언가가 비록 가짜라 할 지라도 그것은 현실적으로 보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치 <카네이션>의 무대를 위해 사용되었던 조화가 진짜 카네이션으로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 있어서의 리얼리즘(realism)을 강조하면서도 팝스트는 작품이 문자 그대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말을 참고한다면 <팔레르모>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벽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상징한다고 해석하거나 <네페스>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성들을 학대 받는 대다수의 터키 여성의 처지와 직접적으로 연관 지으면서 감상하는 실수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아우르는 디자이너로서 팝스트의 철학은 더 멋진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관객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무대 위의 공연자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팝스트는 단순히 멋지기만 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 매혹적이고, 이해가능하며,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그 결과물이 아름다운 무대나 인상적인 무대 컨셉으로 인상지워 지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총체적인 훌륭한 공연물로서 관객들의 기억에 남기를 바라고 있다.
⑤ Agua (아쿠아 : 2001) photo by 우종덕
⑥ Tenchi (천지 : 2004) photo by Ursula Kaufmann
⑦ Rough Cut (러프 컷 : 2005) photo by Ursula Kaufmann
⑧ Bamboo Blues (뱀부 블루스 : 2007) photo by Ursula Kaufmann
'뭐좀보고 웅얼웅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용] 피나 바우쉬 Nefés (3) | 2008.03.18 |
---|---|
[피나바우쉬-네페스] 피나 바우쉬를 사랑한 거장들 (0) | 2008.03.13 |
[콘서트] Sweetpea 거절하지 못 할 제안... (0) | 2008.02.23 |
[연극] 물망초 펜션 (0) | 2007.12.16 |
[콘서트] 신해철 데뷔20주년 콘서트 - 일렉트릭 서커스 (0) | 2007.11.26 |